길상호 시 모음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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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시 모음 20편

김용호 0 77
길상호 시 모음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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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자의 몸

길상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 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댈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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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아지풀

길상호

지난 세월 잘도 견뎌냈구나
말복 지나 처서 되어 털갈이 시작하던
강아지풀 , 제대로 짖어 보지도 못하고
벙어리마냥 혼자 흔들리며 잘도 버텨냈구나
외딴 폐가 들러 주는 사람도 없고
한 웅큼 빠져 그나마 먼지 푸석한 털
누가 한 번 보듬어 주랴, 눈길이나 주랴
슬픔은 슬픔대로 혼자 짊어지고
기쁨은 기쁨대로 혼자 웃어 넘길 일
무리 지어 휘몰려 가는 바람 속에
그저 단단히 뿌리박을 뿐, 너에게는
꽃다운 꽃도 없구나
끌어올릴 꿈도 이제 없구나
지금은 지붕마다 하얗게 눈이 내리고
처마 끝 줄줄이 고드름 자라는 계절
빈집에는 세월도 잠깐 쉬고 있는 듯
아무런 기척 없는데 너희만 서로
얼굴 비비며 마음 다독이고 있구나
언 날이 있으면 풀릴 날도 있다고
말없이 눈짓으로 이야기하고 있구나
어느새 눈은 꽃잎으로 떨어져
강아지풀, 모두 눈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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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미의 바느질

길상호

개미가 많은 집에 살았네
장판과 벽 사이
문턱과 바닥 사이
일렬로 늘어선 개미 행렬은
어머니 바늘을 뒤따르는 실처럼
개미 개미 개미 개미 ……
벌어진 사이를 꿰맸네
아껴야 잘 사는 것이여,
날마다 허리를 졸라매던 그녀도
한 마리 붉은 개미
그래도 허기를 벌리는 입은
쉽게 봉할 수 없었네
날마다 늘어나는 틈새를
독하게 기워내는 바늘,
녹슬 틈 없던 그녀의 믿음 아니었으면
벌써 무너졌을 그 집에서
나 그녀로부터
바람 하나 들지 않는
옷 한 벌 얻어 입고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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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울눈

길상호

그 날은 나무와 눈이 맞았다
한동안 뿌리 근처를 서성이며
내가 불쌍한가, 나무가 더 불쌍한가 가늠했다
처음에 잎도 하나 없는 나무쪽으로
연민의 무게가 기울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직 어머니가 남아 있고
바람 잘 날 없었지만
이제는 바람에도 이골이 났으므로
나무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무의 눈과 마주친 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나무는 솜털 덮인 눈, 따뜻한 눈으로
터무니없는 내 생각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우습다는 듯 우습다는 듯
첫눈은 가지마다 내려 쌓였고
그날 겨울눈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그만
나무 밑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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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화가 피는 것은

길상호

바람 차가운 날
국화가 피는 것은,
한 잎 한 잎 꽃잎을 펼 때마다
품고 있던 향기 날실로 뽑아
바람의 가닥에 엮어 보내는 것은,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모으기 위함이다
그 여린 날갯짓에
한 모금의 달콤한 기억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하여 마당 한편에
햇빛처럼 밝은 꽃들이 피어
지금은 윙윙거리는 저 소리들로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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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노인이 지은 집
 
길상호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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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길은 어디로 가나

길상호

조심조심 저 길 끌어당기면
방패연처럼 뚫린 마음의 구멍
달빛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걷는데
순간, 툭, 길이 끊기고 만다
사라진 달은 어느 가지에 걸려
창백한 얼굴로 울고 있을까
팽팽했던 길은 또 어디서
긴장이었던 삶을 풀어놓고 있을까
발목의 매듭 자리 꽃물 젖으며
마음의 구멍 더 넓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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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돌탑을 받치는 것

길상호

반야사 앞 냇가에 돌탑을 세운다
세상 반듯하기만 한 돌은 없어서
쌓이면서 탑은 자꾸만 중심을 잃는다
모난 부분은 움푹한 부분에 맞추고
큰 것과 작은 것 순서를 맞추면서
쓰러지지 않게 틀을 잡아보아도
돌과 돌 사이 어쩔 수 없는 틈이
순간순간 탑신의 불안을 흔든다
이제 인연 하나 더 쌓는 일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마다
잔 돌 괴는 일이 중요함을 안다
중심은 사소한 마음들이 받칠 때
흔들리지 않는 탑으로 서는 것,
버리고만 내 몸도 살짝
저 빈틈에 기워 넣고 보면
단단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층층이 쌓인 돌탑에 멀리
풍경소리가 날아와서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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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당벌레

길상호

손바닥에 올려놓은 무당벌레
차근차근 손금을 읽다가
사람의 운명이란 게 따분했는지
날아 가버리고 만다
등껍질의 점처럼 선명한
점괘 하나 기다리던 내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불어 가는 바람처럼 무심히
무당이란 이름도 버린
벌레,
나는 언제쯤 나에게서 훨훨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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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람의 무늬

길상호

산길 숨차게 내려와
제 발자국마다 단풍잎 붉게 물들이는,
잎들뿐 아니라 오래도록 위태롭던
내 마음의 끝가지도 툭툭 부러뜨리는
바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향천사香川寺 깊은 좌선坐禪 속에서
풍경은 맑은 소리로 바람을 따르고
나의 생각들도 쫓아갔다가 이내
지쳐 돌아오고 마네

이 골짜기 전설傳說만큼이나 아득하여서
마음을 접고 서 있네 그랬더니
아주 떠난 줄 알았던 바람 다시 돌아와
이제는 은행나무를 붙잡고 흔들며
노란 쪽지들을 나에게 보내네

그 쪽지들을 펴 읽으며 나는
바람과 나무가 나누는
사랑을 알게 되었네, 가을마다
잎을 버리고 바람을 맞이하는 나무의
흔적,
나무는 깊은 살 속에
바람의 무늬 새겨 넣고 있었네
그 무늬로 제 몸 동여매고서
추운 겨울 단단히 버틴 것이네

풍경 소리가 내 마음의 골짜기에서
다시 한 번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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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봄비에 젖은

길상호

약이다
어여 받아먹어라
봄은
한 방울씩
눈물을 떠먹였지
차갑기도 한 것이
뜨겁기까지 해서
동백꽃 입술은
쉽게 부르텄지
꽃이 흘린 한 모금
덥석 입에 물고
방울새도
삐! 르르르르르
목젖만 굴려댔지
틈새마다
얼음이 풀린 담장처럼
나는 기우뚱
너에게
기대고 싶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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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린 별이 떴네

길상호

작은 혀가 웅덩이 물에 닿을 때마다
새끼 고양이는 조금씩 일렁이며 지워졌네

물결 속에서 야옹야옹야옹
끝도 없는 흐느낌만 더해가고 있었네

마른 탯줄 끝에 묶여 있는 새벽이
냄새를 풍기며 썩어 가는 시장 골목

물웅덩이는 생선들의 몸을 씻어내고 태어난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비린 무덤

죽음으로 내장을 부풀린 새끼 고양이는
몸을 눕힐 구석이나 갖고 있을까

묘괴에 홀려 천막을 긁던 바람이
잠시 머물려 젖은 털을 핥아주고 갔네

찢어진 차광막 사이로 비늘처럼
생기도 없는 별이 몇 개 떠 있었네
☆★☆★☆★☆★☆★☆★☆★☆★☆★☆★☆★☆★
《13》
심해의 사람

길상호

어떤 빛도 닿을 수 없는
바닥에 내려가 산다 했어요
심장의 열수분화구를 식혀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요
우울도 지그시 수압으로 눌러놓고
텅 빈 눈의 유령 상어처럼 떠돌다 보면
이따금 내려앉는 기억의 사체들
물컹한 살점이나 뜯으면서
시간의 색깔은 의미가 없다 했어요
그래도 목숨은 즐거움을 원해서
몸을 켰다가 껐다가 발광 놀이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놀이,
암흑의 바다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뭍으로 돌아갈 수 없다네요
결 고운 바닥에 어서 뼈를 내려놓는 게
지금의 유일한 희망이라 말하는
그는 심해를 사는 사람, 돌아서는 등에
날선 지느러미가 돋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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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연의 귀

길상호

연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든다

물 속에 가부좌를 틀고
연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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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오동나무 안에 들다

길상호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면
낮 동안 바람에 흔들리던 오동나무
잎들이 하나씩 지붕 덮는 소리,
그 소리의 파장에 밀려
나는 서서히 오동나무 안으로 들어간다
평생 깊은 우물을 끌어다
제 속에 허공을 넓히던 나무
스스로 우물이 되어버린 나무,
이 늦은 가을 새벽에 나는
그 젖은 꿈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때부터 잎들은 제 속으로 지며
물결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너도 이제 허공을 준비해야지
굳어 버린 네 마음의 심장부
파낼 수 있을 만큼 나이테를 그려 봐
삶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질 때
잔잔한 파장으로 살아가는 우물
너를 살게 하는 우물을 파는 거야
품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면
몇 개의 잎을 발자국으로 남기고
오동나무 저기 멀리 서 있는 것이다
☆★☆★☆★☆★☆★☆★☆★☆★☆★☆★☆★☆★
《16》
자기장을 읽다

길상호

밝혀도 꿈틀, 움직일 수 없다
마른 흙바닥 위에
지렁이는 죽고 말았다
자성 강한 죽음이
반대 극의 식욕을 불러들인다
쇳가루처럼 시커멓게
달라붙은 개미 떼
자기장이 참 길기도 하다
식은 국밥 대신
제 몸 한 조각씩 대접하는
한낮의 뜨거운 장례
꼬마들도 뭔가에 이끌린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자기장을 유유히 벗어나는 건
배가 없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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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저물녘

길상호

노을 사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역

누군가는 떠나야 하고
또 누군가는 남아 견뎌야 하는 시간
우리 앞에 아주 짧은 햇빛이 놓여 있었네

바닥에 흩어진 빛들을 긁어모아
당신의 빈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이미 어둠이 스며든 말은 꺼내지 않았네
그저 눈을 감고 바라보면서
서로의 얼굴을 그려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바람이 한 줄 역 안으로 도착했네

당신은 서둘러 올라타느라
아프게 쓰던 이름을 떨어뜨리고

주워 전해줄 틈도 없이 역은 지워졌다네

흙 묻은 이름을 털어 비석 속에 넣어두고
돌아서야 했던 저물녘

당신의 무덤은 나의 다음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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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차 한 잔

길상호

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 찻잎 덜어낼 때
귓밥처럼 쌓여 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차갑지도 않게
숙우(熟盂)에 마음 식혀내는 일,
빗소리와 그 사이 떠돌던 풍경소리도
타관(茶罐) 안에서 은은하게 우려내는 일,
차를 따르며 졸졸 물소리
마음의 먼지도 씻어내는 일,
깨끗하게 씻길 때까지 몇 번이고
찻물 어두운 내장 속에 흘려보내는 일,
퇴수기(退水器)에 찻잔을 헹구듯
입술의 헛된 말도 남은 찻물에 소독하고
다시 한번 먼 강 바라보는 일,
나는 오늘 수종사에 앉아
침묵을 배운다
☆★☆★☆★☆★☆★☆★☆★☆★☆★☆★☆★☆★
《19》
침엽수림

길상호

눈 위로 눈이 또 내립니다

한 번도 데워진 적 없는 바람을 들이마시고
당신의 입술은 얼어붙습니다

새들이 나이테 속 서늘한 돌림노래를 꺼내
숲 속에 풀어놓는 동안

당신은 뾰족한 잎들을 하나씩 뽑아
손톱 밑에 낀 얼음을 긁어냅니다

통점을 잃은 상처들이 덧나서
끝도 없이 퍼렇게 번져갑니다

식은 손가락이라도 잡아보고 싶지만
따뜻한 피가 흐르는 나는

당신의 수목 한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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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희망에 부딪혀 죽다

길상호

월요일 식당바닥을 청소하며
불빛이 희망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
믿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
형광등에 몰려들던 날벌레들이
오늘 탁자에, 바닥에 누워 있지않은가
제 날개가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불빛으로 뛰어들던 왜소한 몸들,
신문에는 복권의 벼락을 기다리던
사내의 자살기사가 실렸다 어쩌면
저 벌레들도 짜릿한 감전을 꿈꾸며
짧은 삶 걸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얇은 날개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은 얼마나 큰 수렁이었던가
쓰레받기에 그들의 잔재 담고 있자니
아직 꿈틀대는 숨소리가 들린다
저 단말마의 의식이 나를 이끌어
마음에 다시 불 지르면 어쩌나
타고 없는 날개 흔적을 지우려고 나는
빗자루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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