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 시 모음 7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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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 시 모음 71편

김윤진 시 모음 7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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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슴에서 눈물이 배어나와

김윤진

온 몸 곳곳의 예민한 신경은
곧 터질 것 같은 눈물구덩이라네
신열 앓는 가마솥이라네
그리움이 새어나와 말을 한다
느끼는 만큼 표현하라고
애써 품은 자리는 소중한 터임에도
섧기 만한 어이없음은 왜일까

그랬었지, 항상 마주하면서도
찻잔으로 뚝뚝 떨어지는
그리움의 잘디잔 허물 벗는 알갱이
가슴에 손을 얹으면
흐느끼는 눈물 낭자하게 배어나와
삭히려, 그만 삭혀버리려
폭우 속을 달려가는
와이퍼의 부지런한 움직임처럼
사는 것이 늘 부산했음을
그대는 아실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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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슴으로 느끼는 가을

김윤진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 많아
이리도 허전한가 봅니다
시간을 삼켜버린 가을이 되면
아리게 되살아나는 것들
엉거주춤 오갈 수 없었던
그대의 고뇌까지도

그리움으로 묶는 계절
흐느낌을 참아보지만
지치고 마는 인내심은
밖으로 솟구칠 것 같습니다
그대에게 다다르지 못하고
흘려버려야 했던 감정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왜 이리 퍼붓는 빗속 같을까요
가슴으로 느끼는 가을은
그대 기억이 너무 아파서
눈물바람에 속만 헤집다 늘어집니다
늘 가을은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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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을 속의 커피는 연인처럼

김윤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다정한 사람과 향기로움을
나누고 싶은 가을
에스프레소의 쓴맛이
온몸으로 퍼진다
한 잔의 소주처럼 강렬하게
그에 휘핑크림이나 레몬을 얹은
맛깔스러운 느낌은
낙엽 쌓인 벤치에서
연인과 함께하는 감미로움이다

가을비 내리는 날
헤즐럿이나 블루 마운틴을
천천히 음미하면
혀끝에서부터 환희가 느껴지고
주룩주룩 빗소리가
현악기의 선율에 화음을 맞추면
생활 속의 백미
점점 아름다움 속으로 빠져든다
시시 때때로 한 잔의 커피가
연인처럼 그리운 계절
매혹적인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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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을 햇살 같은 그리움

김윤진

그리움을 뭉쳐놓은 것 같은
가을꽃들이 사랑을 머금고 있어요
모두 내게 다가오는 듯 느껴지는
따사로운 어느 날
심정 깊은 곳을 노크하네요
생각이 일치된 누군가가
곁에서 바라보는 듯합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
우리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하늘은 높아졌는데
마음은 하늘과 가까워진 기분입니다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지요
막연히 가을 햇살 속에서
얼마나 보고 싶은지
묻고 싶은 말이 많은데
모습은 볼 수가 없네요
한 번만이라도
혹여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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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을비는 내리고

김윤진

주절주절 할 말도 많은가
속내를 털어놓던 빗줄기는
더욱 큰 소리를 냅니다
잔뜩 흐려진 하늘을 보면서
곧 화를 볼 줄 알았지요
목에 찬 감정을 숨기며
입을 꼭 닫더니
지난밤에는 떠들썩했습니다

슬픔을 감추던 얼굴은
일그러짐이 심히 깊었고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가을비는 소란스레
밤이 깊도록 내리니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넉넉히 풀어놓는 가을이기에
조금씩 너그러울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을 닮은 가을비도
조용히 다녀갈지 혹, 모를 텐데
그렇게 느껴서겠지요
가을은 가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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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을엔 사랑할 채비하게 하소서

김윤진

가을을 곁에 두고
홀로 가슴엔 낙엽더미가
쌓였다, 스스로 타버리는 재가 되어
저기 저 벌판에 서있는
외줄기 처연한 사랑이 있습니까
펼친 시간 허락하시고
비로소 사랑 받게 하소서
겨울 오기 전, 낙엽 지듯
사랑 또한 진다해도
한 계절 앓느니
한 계절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엔 마주하게 하소서
할퀴고 저버려진 가지에는
청록의 싹 움틀 리 없고
미래도 생명도 잃어 가리니
선선히 받아드린 사랑
무너질 때로 무너질지라도
이별의 전주곡은 마소서
한줌 사랑의 엽서 띄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다시 가을엔
사랑할 채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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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을이 되니

김윤진

가을이 되니 공연히
눈시울 적시는 일이 많아진다
슬픈 음악 가슴에 와 닿아
흘러내리는 눈물 주체 할 수 없고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
마음을 어지럽힌다
고른 숨쉬며 다잡으려 하지만
계절의 유혹은 소란스럽기만 하다

시간은 태양을 향해 가고
사람은 세월 따라간다
헤어져선 살 수 없던 사랑도
삶 속에 묻혀 하나, 둘 비워가며
포기를 배운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내려놓는 것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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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지 못한 길

김윤진

가지 못한 한 갈피 접었지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한 걸음 나아본다
깊은 명상 속에서 해후하고도
미련은 미련대로 아름다웠다 하자
생각마저도 야속한 죄가 된다면
또 다른 운명이라 다가오는 건 어쩌리

가고 싶은 한 길 못 갔지만
생각은 앞서 산 정상에 다다른다
오르막길을 가지 못한 나약한 이기심이
바닥을 기는 자괴감으로
사지의 힘을 나직나직 떨어뜨린다
지레 놓아버린 인연은 하늘로 흩어졌다
멀리, 갈망조차 할 수 없이 아주 멀리
그래서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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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대 사랑은

김윤진

새벽 안개가 피어오르는
아파트 앞 저수지에선
정든 목소리 들리는 듯하고
울창한 저편 수목원에선
고운 모습 보일 듯한데
그대여, 어데 있는가

가을이 오니
저마다 마음 한 자락에
사랑과 낭만을 담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흰색이 단순한 흰색이 아니라
무지갯빛으로 어리비치던 날
곳곳이 그대였고
그대의 자리였습니다

행복을 봅니다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세상이
진정한 삶이고 사랑이나니
사랑은 항상 긍정적인 편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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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대는 가슴에 저장된 파일입니다

김윤진

눈의 거리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줄 알았습니다
일상 속에서 잊혀지면
영영 잊혀질 줄 알았습니다
가슴에 저장된 파일처럼
더는 담을 수 없이 가득 찬
커다란 파일이 그대인 것을

펄펄뛰는 조바심은 없지만
그대에게 중독 되어
가슴으로 머무른 영원한 초대
잊혀지면 잊혀지는 대로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희석된 열정은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살아온 만큼의 넉넉함입니다

사랑이란 폴더 안에서
그대의 흔적을 회상해 보노라면
아직도 기억의 문고리는
지난날을 붙들고 있었기에
파일은 손상되지 않았음을
애써 잊으려 안한 까닭일까요
서둘러 보내지 않으렵니다
아아, 그대는 고스란히
가슴에 저장된 파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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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래 보고 싶었다

김윤진

잘 지냈구나
안정된 목소리가 평안함을 말해주는
너의 부드러움을 접하고야
비로소 나의 혼은 자유로웠다

한곳에 정신을 모으고 있을 땐
그곳에 모두 묶여 있지
낯설고 어두운 국도를
밤새 돌고 도는 듯한 막막함

소식 없는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온전히 자리했을 거라 여겼을 땐
이미 빗겨간 후였고

무엇도 아닐 거라 여겼을 땐
다시 돌아와 마음을 지키고 있는
참 무심한 친구였다

잘 있었구나
그리움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땐
언 눈물이 되었지
그래 보고 싶었다

어떤 숫자로도 매길 수 없는
너의 참 의미를 느끼며
늘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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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를 닮은 별이

김윤진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순간 그 순간부터
목이 타는 눈물이 납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이별의 암시가
두 눈을 묶어 놓았습니다
쳐다볼수록 바라볼수록
단장의 아픔입니다
사랑이란 언어로는
다 하기 아까운 그 이름을
일기장 속에 묻어두고
절절히 앓는 가슴으로 그려봅니다

그를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그를 보내던 날
하늘의 몸부림같이
내 전신이 젖어 있습니다
꿈속의 나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생시처럼 죽어 있었습니다
긴 시간을 그의 영혼에 묶인 채
맥없는 눈물이 납니다
서럽디 서럽도록

지금쯤
그는 별이 되어 지켜볼까요
이제는
진정, 별이 되고 싶습니다
그를 닮은 별이
튜울립 향기 나는
그를 닮은 별이
눈물이 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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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리움의 계절

김윤진

온통 낙엽으로 한창인 늦가을
FM을 들으며 걷는 시간은
또 다른 하루의 명상이다
그리움은 절절한 상상을 쫓고
영혼은 어느 강가에서
흐르던 지난날과 포옹하고

저기 저만치서 어둠의 그림자
드리워질 준비를 한다
가슴 밑바닥부터
간절한 사랑을 움켜쥐고
눈물 어린 것들은 한 해의 바다에
실어가기를 빌어 본다
아, 그러나 떠오르는 순간
글썽거려지는 눈가
보듬고 가는 생은 얼마나 시린지

잠 못 이루는 밤이 길어지고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염없이 늘어지는 기억의 사슬들
그리움은 이내 자리를 비켜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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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기다림을 배우며

김윤진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물이 채워져
하나로 연결되는 바다처럼
가슴에 사랑이 가득해지면
당신은 나, 나는 당신
그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당신은 물과 같은 사람
사랑할수록 바위틈에서 샘솟듯
새롭게 가득 차오르는 온정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본디 바탕이 맑아서
투명하게 푸르른 심성
당신은 바다입니까
그런 당신이 있어
갈수록 더욱 좋은 나날
하늘은 내게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도 좋을만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난 죽기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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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무의 독백

김윤진

야생초와 같이 자유분방했던 성격도
정돈된 나무가 됩니다
옹골지진 못해도 푸른빛이길 소망하며
작은 몸짓에도 나뭇잎은 귀 기울였습니다
무릇함은 낙엽 같은
슬픔을 흘리고 다녔지만

어둠은 명상 속으로 빠져듭니다
영혼은 새털처럼 가벼워져
어느새 그대에게 안깁니다
지금이었어요
생각하는 바로 그 시점이
용기를 낼 때인 것을
할 말 못해 두근거리는 심정이라니

내 마음 같을 거라고, 그러리라고
아, 그렇게 속기도 잘합니다
후벼서 받을 청솔 가지의 상처가
더럭 겁이 나는 걸까요
정맥을 타고 찬 기운이 흐르니
뿌리부터 시립니다
삶이 이리 매서운 것을 알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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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 영혼 스러지기 전에

김윤진

더 할 수 없이
막바지에 다다른
절망감이 가슴을,
목을 쥐어 누르고
인내하면 조금은
나아지려니 생각한
나를 질책(叱責)하듯
끊임없이 무너지는 것들

짊어질 기운도
생각조차도 할 수 없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을 따름인데
가도 가도 지친 넋두리만
산처럼 덮여있구나

유서(遺書)를 쓰는 마음으로
스산하게 이어간 일기
신경 곳곳을 슬프게 하고
흐를 눈물마저 말라버린
지금 심경은
마지막으로 그리운 이를
내 영혼 스러지기 전에
만나고 싶을 뿐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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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게 온 그대의 행복향기

김윤진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이것이 행복이었어요
비 오는 날 듣는
마이클 호페의 음악처럼
그대, 바다 같은 물색사랑은
스러져도 좋으리 만치
벅찬 행복감에 젖어들게 합니다
하늘을 바라보세요
높이 나는 갈매기는
훨훨, 거침없는 날갯짓
우리를 빼닮은 사랑인 것을
그래요
빈 하늘은 아니었습니다

아, 저 붉은 석양 아래
춤추듯 출렁이는 바다는
정녕 바다랍니까
넘치는 그대의 사랑입니까
온정신이 마비된 채
매혹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모든 것들은
손끝부터 저려오는 맑은 아름다움
그대로 한 편의 詩가 됩니다
모두가 내게 온 그대의 향기
그대가 안겨준 행복입니다
☆★☆★☆★☆★☆★☆★☆★☆★☆★☆★☆★☆★
《18》
너를 위한 독백

김윤진

어쩌다 그런 사랑을 해서
혹독한 열병을 앓고 있니
한동안 정신을 놓을 텐데
살얼음 같아 편치 않구나
때때로 성난 불꽃처럼
이는 가슴을 어쩌려고

어느 곳이 아픈지
울컥 이기지 못할 땐 의지하렴
만만한 삶 없겠지만
소중히 자신을 아끼면
차차 편해질 수 있을 거야
너를 위해 도울 게 없어
너를 위한 독백으로
이 환한 봄을 채운다
☆★☆★☆★☆★☆★☆★☆★☆★☆★☆★☆★☆★
《19》
눈은 내리는데

김윤진

눈은 내리는데
길 한가운데서 울음이 터졌다
난감하게도 주위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애초부터 밀려오는 것들을 감내하기란
벅찬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낙엽 더미 위에도 하얀 눈이 쌓였다
그늘진 삶의 한 귀퉁이 지울 수 있다면
낙엽처럼 모아 흔적 없이 태우련만
다시 시간은 발자국을 남긴다

숨죽여 있던 무엇이 용트림하며
밖으로 나오려 한다
모든 것을 인내하기란
하늘 지는 나무처럼 힘겹지만
그대가 있어서 견딜 수 있음을

아직 시끄러운 속은 아득한데
하늘은 조용히 흰옷으로 세상을 치장해 간다
무심히 상관없는 듯
☆★☆★☆★☆★☆★☆★☆★☆★☆★☆★☆★☆★
《20》
늦깎이 사랑 때문에

김윤진

별처럼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행복한 것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백야를 보내고도
새겨진 그리움의 파편 같은 편린
적막감마저 아름다운 날
당신 향한 마음 때문에

끝없이 들려 오는 사랑의 소나타
숨이 멈출 것 같았습니다
놀라운 사랑의 기쁨을 전해 준
오, 신비로운 사람
하늘처럼 먼 줄 알았는데
능파하여 다가 온 그대
일렁이는 가슴은
늦깎이 사랑 때문에
☆★☆★☆★☆★☆★☆★☆★☆★☆★☆★☆★☆★
《21》
늦은 가을

김윤진


분연히 일어나 걸어가길
더 높고 푸른 날을 위해
우거진 숲으로 향유하는
활기찬 젊음은
화려한 여름이 지난 후에도
온유하여 찬미 받을 수 있도록

숙연한 가을은
더욱 심오한 뜻으로
심장에 부딪히고
각인 된 겸양(謙讓)의 사슬은
분신처럼 늦은 계절에
자신이 될 수 있도록
☆★☆★☆★☆★☆★☆★☆★☆★☆★☆★☆★☆★
《22》
당신 사랑 안에

김윤진

희부옇게 보슬비가 내리는
고즈넉이 깊은 밤
불면의 긴 터널에도
우리 영혼은
함께 살아있습니다.
당신 사랑 안에 제가 있고
그 사랑 안에 당신이 있기에
속삭임은 허공을 뚫고
이미 곁에 와 있거늘

하늘에 새긴
허기진 그리움은
뽀얀 안개

지금쯤
서산 앞 바다의 작은 섬엔
사위여 가는 가슴 달래는
해당화가 피었겠지요
☆★☆★☆★☆★☆★☆★☆★☆★☆★☆★☆★☆★
《23》
당신만의 그대가 있잖아요

김윤진

갈 곳 없이 길을 나서도
마음이 따사로운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가 산책길 나란히
도란도란 속삭이는
대화가 고운
넉넉한 저녁시간
적적하던 마음이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바람에 머리채를 잡힌 채
휘어있는 나뭇가지는
허공에 늘어져도
뿌리는 굳게 지켜냅니다
산란한 마음일랑
일찍 접어두세요
곁에 사랑하는 어여쁜
당신만의 그대가 있잖아요
보세요, 잊지 마세요
☆★☆★☆★☆★☆★☆★☆★☆★☆★☆★☆★☆★
《24》
당신은 나의 의미

김윤진

당신의 몸짓은 의미가 되고
당신의 말 한마디는 믿음이 된다

오늘도 그 얼굴에 내비친 뜻은
곧 나의 신앙처럼 진리가 되어
숨쉬는 요소로 굳혀진다

아, 당신의 입술이 떨고 있을 때
내 온몸은 파랗게 식어 가거늘
님이여, 오래 오래
웅장한 숲으로 서 있기를
☆★☆★☆★☆★☆★☆★☆★☆★☆★☆★☆★☆★
《25》
당신은 너무 먼 사람

김윤진

마치 한여름 밤 꿈을 꾸고 난 듯
보물을 손에 쥐었다가 놓친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착각 속에서 행복했지만
처절히 초라합니다
피하려는 것을 먼저 알았어야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돌아본 사랑은 눈물 꽃으로 시들고
또 다른 사랑은 버선발로 맞는가 했는데
사랑은 두려움으로 가슴에 누워
전신을 짓누르듯 고통으로 앞서갑니다
풀어헤친 머릿결을 보드라운 영혼으로 빗질하며
새롭게 파고드는 미지의 그림자

당신은 너무 먼 사람
바라보기에도 눈이 부셔요
어느새 난 빠져있는 것 같은데
혼란의 빗자락을 붙들 순 없는지요
☆★☆★☆★☆★☆★☆★☆★☆★☆★☆★☆★☆★
《26》
당신을 사랑하는데

김윤진

어떡하지요
당신을 사랑할 것 같습니다
종일 주변에서 서성이며 휘둘리는
그림자 같은 사랑을 아시나요
첫 눈에 알아봤지요
운명처럼 다가 온 사람이란 것을
그대 내게로 오세요
넉넉히 빛 고운 하늘이
물색 투명한 바다가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내 목소리의 한 음이 높아집니다
그대 사랑으로 인해
둥실 부푼 영혼
하늘로, 하늘로 올라갑니다

늘 지나고 나면 후회뿐인 실수투성이
고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대답 없는 산자락 너머
아득한 기억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주위엔
밝히는 불빛이 너무 많군요
함께 누릴 자리가 없어요
두근거리는 심장은 말합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은
흐르는 눈물로도 견디기 힘들다고

새벽 여울지는 사랑결 무늬
잔잔한 파문이 일다가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처럼
숨 가쁘게 흘러가는데
오늘도 고백하지 못하고
헛되이 보낸 하루
붉은 노을 가득 발그레한 볼 붉히며
하늘은 마치 꾸짖는 것 같습니다

외사랑 인 듯 처연한 얼굴이
나를 그늘지게 합니다
여전히 침묵하는 사람
나의님이시여
이별을 노래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안녕은 없답니다
오늘도 전전긍긍
백야를 보내고도 은사시나무
현기증 일 듯 부른 이름
목청껏 또 부릅니다
어떡하지요
당신을 사랑하는데
☆★☆★☆★☆★☆★☆★☆★☆★☆★☆★☆★☆★
《27》
당신을 사랑한 죄입니다

김윤진

당신을 사랑한 죄입니다
충직한 눈은 깊은 병을
가련한 심장에 새겼기에
싸늘한 대리석 위에 누운
긴 한숨 자리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당신과 내가 있어
여전히 깊고 어둔 밤처럼
단절된 세상도
찬란한 아침입니다

내 눈과 귀가 족쇄에 채워져
당신과 함께 있지 못할지언정
우리 마음 열려 있으니
어디라도
내 영혼 둥둥 떠다니며
빈 바람맞아도
당신 있는 곳에 다다를 것입니다

다만, 당신의 고통마저 짊어짐은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
《28》
당신이 없기에

김윤진

당신이 없기에
낡고 지루한 시간의 공백이
감정의 차원을 낮게 합니다

횃불을 밝히던 위대한 사랑은
오랜 세월을 머물지 않고
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가는군요

문풍지를 흔들며
천지가 진동하는
거센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
가슴으로부터의 지진입니다
때문에 나의 자존은
더욱 자지러지기만 할 뿐입니다
☆★☆★☆★☆★☆★☆★☆★☆★☆★☆★☆★☆★
《29》
먼 훗날

김윤진

먼 훗날
당신을 생각하노라면
지금 같은 가슴앓이는 가셔지겠지요
천 길 만 길 떠난 친구로만
아로새겨져 있기를
그저, 넉넉한 마음으로
푸르렀던 시절을 추억하기를

먼 훗날
당신을 만나노라면
지금 같은 가슴 떨림은 없어지겠지요
물새울음처럼 서러운 기억을
송두리째 끌어안고
깊게 파묻어 버린 후였다고
먼 훗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
《30》
바다가 우는 것은

김윤진

겉으론 늘 담담한 얼굴로
태연스러웠던
에메랄드빛 사랑은
잔잔한 호흡까지 마셔버렸다
신실한 출렁임에
살포시 달아올랐던
연모의 정

두려움도 없었을까
성큼 다가선 마음의 거리
그리움은 서로를 채우며
형상을 갖춰갔지
운명마저도 닮았다고 느낄 무렵
거센 물살은
투명한 마음속을 훔쳐본 삶은
잔모래 같은 너의 속내를
그만 울리고 말았구나
그래, 바다가 우는 것은
바다가 흔들리는 것은
못 다한 말이 목젖까지 올라와
수면 위에서 맴돌기 때문이었어
☆★☆★☆★☆★☆★☆★☆★☆★☆★☆★☆★☆★
《31》
바람과 비

김윤진

가녀린 비가 굵은 빗줄기로
온 누리는 물바다로 출렁거렸다
그 속에서 나는 보았다
빗자락의 내음을
그대의 사랑이 비를 닮았다

무섭게 흔드는 소낙비처럼
혹은 조용히 다가오는 이슬비처럼
그리하여 내 가슴에
온통 그대가 가득 넘치도록

바람은 빗발치는 데로
발자국을 남겼다
언제나 되풀이되듯
사랑하기에 고통스러운
빈 가슴으로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람과 비는
사랑과 상처로
늘 내 주위에서 맴돌았다
☆★☆★☆★☆★☆★☆★☆★☆★☆★☆★☆★☆★
《32》
바람아 너도 몰랐구나

김윤진

늘 뒤를 따라 오다간
그대는 길모퉁이에서
들킬까, 놀란 아이처럼
힘없이 돌아가는 길엔
나무들조차 표정도 없었겠지

구름 한 점 없는데
하늘은 잔뜩 찌푸려져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대로 주저앉기를 몇 번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참으려 할수록 굵은 줄기는
펄펄 신열을 토한다
나는 몰랐다
그대가 느낀 만큼일 줄

우리 그런 인연인 것을
바람아, 너도
잃어버린 인연 찾아 떠도니
사랑 할 수 있을 때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바람아, 너도 몰랐구나
☆★☆★☆★☆★☆★☆★☆★☆★☆★☆★☆★☆★
《33》
보소서

김윤진

보소서
오늘도 그랬습니다
어찌 어찌하다 보니
또……
끝없는 애련(哀戀)은 그만인가 했는데
아직도

보소서
투명한 하늘가에
혼 들고 서 있는 하얀 떨림을
겨워 설운 눈 그늘을
파고들다 복 바쳐 스러지는
몰락한 운명처럼
훔치고 달아난 인연처럼
그대는
달이고
구름이더이다

내내 그곳에 머물고 계십니까
이제 그만 잊으소서
보소서
보소서
☆★☆★☆★☆★☆★☆★☆★☆★☆★☆★☆★☆★
《34》
비가 온다지요

김윤진

빗물이 흐르는 것처럼
당연히 삶 속에 들어와
눈물이 되신 이여
지금 비가 온다지요
밖에는 비가 내리지만
내장 깊은 곳에선
채 흐느끼지 못한 애상한 눈물이
바다를 버금갑니다
여한 없이 사랑했던
청춘의 산머리엔
생생한 꽃들로 가득한데

살아야 하기에 사는 인생이라면
주검 같지만
살아있기에 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
비가 온다지요
또, 비가 내리니 빗속에서 들려오는
애끓는 목소리로 여울지며
심장부터 주저앉고 맙니다
다시 내리내리
☆★☆★☆★☆★☆★☆★☆★☆★☆★☆★☆★☆★
《35》
사랑별 하나

김윤진

만지면 터질 것 같은 찬란히도 빛나는 별
성냥불을 그어대면
활활 타오르며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일 것만 같다

초롱초롱한 밤하늘
별자리마다
동화 같은 사랑 한창인데
이런, 어쩌다
별 하나 떨어지네
그건 불구덩이
타오르다 죽을지도 몰라
기왕에 사르는 불꽃이라면
사랑의 조각 아름다운
돋을새김 별 되어라
☆★☆★☆★☆★☆★☆★☆★☆★☆★☆★☆★☆★
《36》
사랑을 앞에 두고

김윤진

사랑을 앞에 두고
나눌 수 없다면
인연이 아니라 여길수록
파고드는 상실감
돌연 육체의 통증으로 이어집니다

어디에 있는 줄 알면서도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자고 깨면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 듯한
막막한 절망입니다

현실이 제시한 숙명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은
마음의 병을 앓습니다
그것은 이룰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앞에 두고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을 앞에 두었다면
조금은 멀어져야 할 일입니다
☆★☆★☆★☆★☆★☆★☆★☆★☆★☆★☆★☆★
《37》
사랑의 종 울릴 때까지

김윤진

내 눈물 쏟아 내듯
내리는 뜨거운 핏물 같은 비

춤추듯 드럼 치는 모습이
노래하듯 섹스폰 부는 모습이
애무하는 님의 입맞춤으로
심장을 고동치게 합니다

사위여 가는 그리움은
자줏빛 불꽃으로 타오르고
우치(愚癡)한 나는
신음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하늘보고 부른 이름
아리따운 님이여!
사붓이 내린 고운 사랑
간직하게 하소서
바라볼 수 있는 행복
거두지 마소서

세월 흘러 흘러
사랑의 종 울릴 때까지
☆★☆★☆★☆★☆★☆★☆★☆★☆★☆★☆★☆★
《38》
사랑의 편지를 쓰세요

김윤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초라해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에
스스로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그리움을 부둥켜안고
사랑의 날갯짓으로 신호합니다

사랑의 편지를 쓸 때면
안부를 묻기에 앞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것이 더 궁금한 것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서이고
모든 시간을 나누고 싶으면
이기심과 소유욕도 싹트나니
참된 사랑을 위해선
많은 기다림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한결같은 사랑을 위하여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겠군요

보고 싶다는 말 보다
더 진솔한 말은 없답니다
시기를 놓치지 마세요
말없이도 알 수 있다지만
사랑은 표현하는 것
마음모양새 무르익었을 때
진실하게 표현하세요
후회란 가장 못난 모습이지요
사랑의 고백
그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습니다
자, 지금 편지를 쓰세요
사랑이 당신 곁에서
그냥 스쳐갈지도 모른답니다
☆★☆★☆★☆★☆★☆★☆★☆★☆★☆★☆★☆★
《39》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김윤진

낮은 회색 돌담 주위의 몽롱한 빛깔처럼
흐릿한 윤곽으로 기쁨의 무아경은
옅은 은별 가득한 심연 속으로 던져졌다

몸 안에서도 반짝거리는 실바람 눈짓 춤
햇살같이 흩뿌려져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모래알처럼 내면의 유리창으로
쏟아져 흘러나온 애련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무작정 길을 나서서, 맞는 모든 이에게
낯설지 않은 다정을 기대 해보지만
찬바람 가슴 깊게 괴어들 소지만 다분할 뿐이다

홀로 살리라 다짐했던
수많은 나날들을 삶의 찬 마루나
누마루에 뉘어 生 가운데, 잊고 쉴 수 있기를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사랑과 더불어
속 시원히 목청 높여 노래라도 부르자
☆★☆★☆★☆★☆★☆★☆★☆★☆★☆★☆★☆★
《40》
사랑이란 이름의 그대라면

김윤진

원치 않던 일이 생길 때의
상심은 피할 수 없지만
가파른 인생의 물살도
평정을 찾을 때가 있고
질퍽대는 빗속에서도
고독을 즐기며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는 것은
맑은 날의 상쾌함 같은
사랑이란 이름의 우산이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느끼고 심취하며
열정을 불사르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오늘이 서럽지 않습니다

수렁이라 느꼈을 때
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랑이 그대라면
흥겨운 음표를 거침없이 그리는
행복한 나날이 될 것입니다
그대가 사랑이란 이름의
바로, 그대라면
☆★☆★☆★☆★☆★☆★☆★☆★☆★☆★☆★☆★
《41》
사랑하는 사람이여

김윤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만나는 순간만은 잊고 싶었습니다
실오라기 같은 한 가닥이라도
붙들고 싶었기에 그런가요
운명을 믿고 싶진 않았지만
정해진 궤도와 짝져진 순서대로
순응해 가는 것이라면
죽음 또한 그러할 텐데
아, 작은 실수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생로병사가 그렇듯이
만남과 이별도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군요

사랑하는 사람이여
달이 이울면 찬란한
밤하늘이 슬픈 까닭은
별처럼 닿지 않는
당신과의 거리에서
나와는 상관없이
홀로 빛나기 때문입니다
사랑 또한 혼자서
꽃피는 짝사랑이었다면
이렇듯 외롭지 않았을 것을
한줄기 꿈조차
버리기란 참,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 두 눈을 감고
그대의 황홀한 매력을 잊으렵니다
시름은 아랑곳하지 마시고
더 이상 주위를 비추는
그 빛은 거둬 주소서
☆★☆★☆★☆★☆★☆★☆★☆★☆★☆★☆★☆★
《42》
사랑하신 님들이여

김윤진

만상의 꽃송이들
숲의 나무 흔들더니
멧새의 무리에 둘러싸이고
생채기 난 속을
소리 없는 헌신으로
사랑하신 님들이여

이슬을 토하고
이내, 그것은 그리움 사르고
사위여 만 가는 가슴.
선바람으로 청산에 서서
초숙 사이 서성이면
사랑의 물길 일어라
☆★☆★☆★☆★☆★☆★☆★☆★☆★☆★☆★☆★
《43》
사랑한다는 것은

김윤진

사랑한다는 것은
믿음같이
진실을 먹고사는 것
보이는 건
하잘것없어 몸 사려지고
언제까지 보고 싶다는 말
정겨워질 수 있기에
지겹다는 말은 접어두고
무작정 좋은 감정이
부담스럽지 않기를
자못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 절제 안 된 까닭은


지독히 아끼기에 그런가
스스럼없는 이름 뒤에
내 것 일수 없는 아쉬움
안타까움이
쓸쓸히 힘들었지
화려하게 흐드러진 꿈
인생의 샛길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가고
마음 속 외곽 쪽엔
제멋대로 자라난 은빛 무늬
따뜻한 창밖으로
가득 퍼져 있는 다정함
사랑한다는 것은
세찬 물결
☆★☆★☆★☆★☆★☆★☆★☆★☆★☆★☆★☆★
《44》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김윤진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물이 채워져
하나로 연결되는 바다처럼
가슴에 사랑이 가득해지면
당신은 나, 나는 당신
그것은 존재의 의미입니다

당신은 물과 같은 사람
사랑할수록 바위틈에서 샘솟듯
새롭게 가득 차오르는 온정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본디 바탕이 맑아서
투명하게 푸르른 심성
당신은 바다입니까
그런 당신이 있어
갈수록 더욱 좋은 나날
하늘은 내게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도 좋을만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난 죽기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
《45》
사랑했습니다

김윤진

잘 지내는지
소식이나 알고 싶은데
전화를 걸고 싶지만
폐가 될까 하여
공연히 신경 쓸까 하여
잊자고 숱한 밤을 달맞이했습니다
인간사가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지켜줘야 할 부분이 있기에
또, 그렇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리운 얼굴 하나
구름이 되어 흘러갑니다
곁에 줄지어 날아가는
새들이 부럽기까지
오래 참아온 나날들은 그럽니다
꽃 피고 열매 맺는 것도 아름답지만
꽃망울이 살짝 고개 내민 것이
더 설레는 아름다움이기에
깊이 묻어두고
마음으로부터 안녕을 하라고요

미련은 없으나
못 다한 안타까움이
가슴 한복판을 긁어냅니다
지금은 사랑합니다, 라는 말보다
사랑했습니다, 라는 말이
마땅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
《46》
숲을 내 안에 두고

김윤진

물빛, 하늘빛들이
오늘따라 하나가 된 듯 새롭다
생각이 많아서 인가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을
무겁게 내딛는 순간
깊은 통증이 느껴진다
얼마간 거부할 수 없는
이 도시와 단절하고
신록의 숲 속에서
아무생각 없이 살았으면

망각의 입술을 가졌는가
세상은 이리도 말이 많은데
말을 잊을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목젖 가득 올라와도
돌덩이를 삼킨 듯
침묵이 편할 때가 있다

나무들과 대화하며
숲을 내 안에 두고
고즈넉이 그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간절함은 빈 마음으로
☆★☆★☆★☆★☆★☆★☆★☆★☆★☆★☆★☆★
《47》
신음하는 새처럼

김윤진

이슬을 흡수하는 황금 소나기
신음하는 새처럼
날개를 떨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누구십니까
창밖에 낯선 여인인 것을
왜, 사랑한다 하십니까

한낮에도 어둡고 지치도록

존재로만 살아 있을 뿐인데
미치도록 흔드는
당신들은 어디서 오셨나요
매질하는 핏물 같은
사랑이 무섭습니다

내 영혼의 노래는 가사도 없답니다
그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뿐
삼층의 하늘엔 안식처가 있을까요
☆★☆★☆★☆★☆★☆★☆★☆★☆★☆★☆★☆★
《48》
쓸쓸한 연가

김윤진

얼굴을 가리고
자신만의 삶 속에서
세상을 향하지 못하는 그녀는
날마다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아마도 기다림의 실체는
잃어버린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그녀에게 있어 세상은
또 다른 별개의 세계인 것을
항시 조갈 나는 그리움으로
꼭 다문 입술, 허약한 미소
그건 차라리 절규였습니다

작은 음악소리가
아침을 깨웁니다
침묵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녀가 살아있음의 유일한 대화는
자기 연민 같은
쓸쓸한 연가뿐입니다
☆★☆★☆★☆★☆★☆★☆★☆★☆★☆★☆★☆★
《49》
어여쁜 꽃이여

김윤진

살살 가만히 미소짓는
한 송이 꽃으로도
행복이 넘치는 여인은
마흔, 쉰이 넘어도
감성은 젊기만 하고
조그마한 일상의 만족은
생활의 리듬을 줍니다

매일 아침 말을 건네면
꽃은 대답하지요
“바라봐 줘서 고마워요”라고
어느덧 향기로운 꽃은
딸을 닮은 탐스런 웃음으로
기쁨을 줍니다

짧기에 화려함이
더욱 돋보이는 꽃이여
피어있는 날까지
네가 준만큼
눈 맞추고 아껴주리라
젊음의 표상
티 없이 어여쁜 꽃이여
☆★☆★☆★☆★☆★☆★☆★☆★☆★☆★☆★☆★
《50》
영혼마저 눈먼 사랑이었다면

김윤진

사랑이 깊어갈수록
당신의 얼굴이 그리워져
떠올리려 하면 할수록
희미한 실루엣으로 그늘집니다
영혼을 다해 사랑한 사람이기에
영혼만을 기억하는 것일까요
사랑의 형상은
외형으론 보이지 않는 것
당신의 겉모습만을
사랑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몸살나는 눈먼 사랑
온몸은 눈이 되어
당신을 바라 볼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혼까지 사랑했기에
영혼마저 눈먼 사랑이었다면
차라리 백치처럼
용솟음치는 아픔은 몰랐을 것을
그만, 저무는 들녘 먼 하늘가에
베인 사랑 하나 묻고 말았습니다
☆★☆★☆★☆★☆★☆★☆★☆★☆★☆★☆★☆★
《51》
오랜 침묵 끝에

김윤진

오랜 침묵 끝에 신기루처럼 나타난 그대
일련의 시련을 참고 건너 온 아픔의 흔적이
뭉뭉하게 심장 끝을 누르고 있다

마안한 바다 건너 지평선을 바라보며
애잔하게 우색(憂色)이 완연한 그대
지세 하게 드러나는 사랑이란 이름

여짓 거리며 모련(慕戀)을 모른 척 할 수 있다면
초초한 기색을 창명(彰明)하게 알고 있는데
왜 그대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알 수 없어라 .

☆★☆★☆★☆★☆★☆★☆★☆★☆★☆★☆★☆★
《52》
오월의 편지

김윤진

오며 가며 유독 우편함에
눈이 가는 날입니다
언젠가 어느 때였던가
길게 접어 쓴 편지에는
온 마음 담겨있었는데
그리워라 찬란했던 시절
다시 찾아 온 오월입니다

생각하면 아름답기만 했던
여린 내 임의 사랑이여
멀리 어느 곳에서
이슬을, 꽃을, 하늘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겨있을까
동화 같은 내 사랑
잠시라도 느끼고 싶어
오월 하늘에 편지를 씁니다
☆★☆★☆★☆★☆★☆★☆★☆★☆★☆★☆★☆★
《53》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김윤진

눈을 감으면
온몸에 새겼던 감정이
목련꽃 피어나듯 하얗게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애잔한 봄
그것은 절절한 애틋함
막무가내 한 그리움이다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은
다친 마음 풀이였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하기 전에
관대함으로 마주보아야 하는 것을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나누고 싶었던 순간이 생각나
대책 없이 목이 메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노래한 것일까
방울방울 눈물의 의미를
이제는 깨달았을까
왜 그토록 미쳤는지
그리하여 왜 혼절했는지
그리운 우리는
☆★☆★☆★☆★☆★☆★☆★☆★☆★☆★☆★☆★
《54》
이미 다가온 지금

김윤진

이미 다가온 지금
스스럼없이
오고간 입김이
황금빛 고요한 옷으로
가슴엔 길을 내었고
지독히도 깊은
숨을 쉬고도
가쁜 숨소리는
안타까운 몸짓이었다

이미 다가온 지금
향기 가득한 꽃 내음은
온 정신을
하나, 둘 앗아가면서
목은 깔깔하게
조갈이 나고
심장의 고동 소리는
격렬한 재즈음악처럼
열광적으로 노래했다
이미 다가온 지금
오래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
《55》
이사 가는 날

김윤진

지내온 정이 꽤 깊었나 보다
지친 육신이 떨고 있을 땐
어머니의 품처럼 그랬는데
그동안 딸아이는 어여삐 성장을 했고
아옹다옹 늘어진 나날이
꽤 오래된 십 수 년
주변머리 없어 한 집에 머문 속에는
시집을 살아내는 암흑도 간혹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언제인가 싶고
어느 하나 가슴에 남지 않은 것 없어
체취와 흔적이 묻어나는 곳

멈췄으면, 바라보던 거울 속에선
흐름은 얄미울 정도로 초췌했는데
나와 함께 시들어간
소중했던 공간을 두고 가려니
옷자락 붙드는 것 같아
자꾸만 뒤돌아본다
잘 있으라, 헤어짐은
마치 애인과의 이별 같구나
☆★☆★☆★☆★☆★☆★☆★☆★☆★☆★☆★☆★
《56》
인생 길을 가면서

김윤진

길을 갔다
길을 가는 동안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혹여 아는척하는 이에겐
목례뿐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아도
어둠이 덮는 길을 지나
불빛 밝히는 곳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길을 갔다
그랬던 것 같다
몽롱한 달빛처럼 확연함도 없이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언제나 뒤적이는 머릿속은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까지도
불을 켜놓고 있었으니

문뜩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세상을 잘못 살아왔을까
가슴팍이 시리더니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두꺼운 옷을 덧입었다
왠지 행동하는 것이 낯설고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를 누구라 하는가
새해벽두부터 막연함이
벽처럼 다가왔다
☆★☆★☆★☆★☆★☆★☆★☆★☆★☆★☆★☆★
《57》
인생의 길 위로

김윤진

질퍽이는 인생의 길 위로
또 다시 비가 내린다
그 비 하늘의 꽃불 되어
사랑의 홀씨 되었나
바람과 이슬과 햇볕을 받고
흔들리는 청춘처럼
흩뿌리며 노래하고 싶다

웬 휘청 임인가
하시도 태연한 척
그러나 난 별수 없이
당신 앞에선
서리 맞고 서있는
한 떨기 이름 없는
설운 꽃인 것을

늘 푸르른 바다는 말없이
거센 파도만 일렁인다
아, 온 육신 내맡기고
어디로든 둥둥 떠 흘러
바람 이는 곳으로
오늘도 가고 싶어라
☆★☆★☆★☆★☆★☆★☆★☆★☆★☆★☆★☆★
《58》
인생의 노래

김윤진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대하기가 두렵습니다
낮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잔뜩 주눅이 들었나 봅니다
이런 모습에 스스로 놀라면서
진정되지 않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만큼의 자리에서 휘어잡을 수 있음에
또 새롭습니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야 했고
그리해도 불협화음은 없었던
삶의 리듬이 한꺼번에 일그러지며
불안정한 노래가 됩니다
곧잘 부르던 노랫말도 잊고
엇박자가 되어 감정을 호소하는
풍부한 목소리도 높아만 갑니다
아름다운 선율에 힘이 가해지고
다양한 성격 두드러지니
서로 몰랐던 모습들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며
거센 파도 가슴에서 해일이 되어
이내 주저앉는 모래성들
잔잔한 바다는 이미 아닙니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 했던
자만은 우르르 무너지며
생활전선에 위험주의보를 알립니다
조용히 자신을 버리고
뒤늦게 깨달은 모든 것도 버립니다
그리하여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
즐거운 인생의 노래를 위해
☆★☆★☆★☆★☆★☆★☆★☆★☆★☆★☆★☆★
《59》
잃어 가는 것

김윤진

이런저런 생각에 치여
누구에게도 내어줄 여유가 없고
만나면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는
이룰 수 없는 사이가
연민으로 동여맸을까

맥없는 한숨도 부질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심정을
충분히 동참하고 헤아렸을까
그만 미련의 자리를 내어주렴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그러나 못 보니 멀어지고
멀어지니 새삼스러워
그렇게, 그렇게 산다는 것은
하나, 둘 잃어 가는 거라지
☆★☆★☆★☆★☆★☆★☆★☆★☆★☆★☆★☆★
《60》
잊었다는 것은

김윤진

잊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없어도 삶에 익숙해지고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간이 그리워하는 이상
사랑이 스러진 것은 아니나니
그럼에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음을
다행이라 여기리

사랑과 이별은
순간의 행복과 불행처럼 일어나는
종잡을 수 없는 것
그러므로 시간 앞에 겸손해야 하고
모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만남으로 인해 벌어지는 제반사
살아있으므로 치러야 할 몫이다
잊힌다 해도
숨 쉬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슬프지만은 않으리
☆★☆★☆★☆★☆★☆★☆★☆★☆★☆★☆★☆★
《61》
정말 좋겠습니다

김윤진

적잖이 외롭다고 느낄 때
외롭다고 말해도
흉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꽃잎이 떨어지면 슬프다고
나뭇잎이 흔들리면 설렌다고
별스럽지 않은 말도
정겨운 대화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무작정 보듬어 준다면
바보처럼 실없이 웃을 텐데
자존심도 버리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
《62》
지금 난 카페에 홀로 앉아있다

김윤진

무작정 약속도 없이
즐겨가던 카페에 앉아서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문뜩 고개를 들면
그리운 얼굴과 마주할 것 같기에
홀로 청승을 떨곤 했지

창문 너머로 장대비가 내리면
가라앉는다
점점 가라앉으면
그대로 땅 속으로 들어 갈 것만 같다
장마철이면 느슨히 스며드는 것
숨어 들어온 지독한 우울
하늘 보다 더 짙은 잿빛이다

새벽안개 같은 마음으로
조금씩 환한 세상을 바라보자
떨치려, 떨쳐버리려
지금 난, 진한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에 홀로 앉아있다 .
☆★☆★☆★☆★☆★☆★☆★☆★☆★☆★☆★☆★
《63》
찬란한 사랑

김윤진

냉혹한 세상에
한마음 줄 곳 있어
따뜻한 평온함은
여유로운 영혼으로
봄바람 따라 떠다닌다

불빛으로 반짝이는
숙명 같은 수면은
추억의 그림자도 삼켜버리고
그리움에 야윈 꽃은
허공을 부유하지만
그대에게 있어 쉼 없이
새로운 사랑으로 피어난다

참으로 오래 기다렸던 그대는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더니
엷은 미소를 머금고
어느덧
내 눈앞에 서 있는 사랑이어라
☆★☆★☆★☆★☆★☆★☆★☆★☆★☆★☆★☆★
《64》
참회의 기도

김윤진

사랑의 깃을 꽂은 님이여
마음을 열고 조심스레 다가왔거늘
두려움에 옷깃을 여미듯
마음의 창틀 사이로
살며시 몸 사려 내다 만 보았습니다

진홍색 장미가
이젠, 창백한 장미로
자줏빛 그늘진 광선 같음에
님이여!
왜, 그토록 연연해하십니까

무슨 대단한 귀족이던가요
보잘것없는 소시민인 것을
다만, 모진 상처 주고 난 후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
《65》
친구야 그래도 괜찮았니

김윤진

친구의 꿈이 사라져 간다.
그래도 어찌 그리 고울까?
사막의 장미는 수 만년을 이뤄
꽃을 피운다는데……
어찌 그리 쉽더란 말이냐?
맺는 것도 등지는 것도
생각하면 설렘보단
다 타고남은 심장의 재만 날렸고

좋은 것보단
미어지는 가슴을 두드려야
눈물을 견딜 수 있었을 텐데……
친구야, 그런 세월이 싫지 않았니?
슬픔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모두 그였고
그는 모두 사랑이었을 테니까?
그래도 괜찮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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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친구의 뜰

김윤진

모처럼 친구의 뜰을 찾았다
몇 해만의 해후였으나
허물없는 거리
오랜 친구였다
조용하게 내려앉은 화분처럼
세상에서 지혈되지 않고
후끈거리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여유로운 휴식 같은

왜 그리 바삐 달려왔는지
이따금 초봄 밤 공기처럼
싸늘함에 친숙할 만도 한데
상념은 길게 이은 세월만큼
또 다른 모습으로 형상을 갖춰
가슴을 누르고 있는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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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커피와 엽서

김윤진

뜨거운 커피 한잔이
여유롭게 하는 날입니다.
서늘한 바람 타고
스며드는 새로운 떨림이
시인의 삶을
참회케 합니다.

헛되이 보낸 날에 대한
어리석은 후회도
한 줄의 글도
내려가지 않는
우울함을 보상하는 들꽃
오늘은 한적한 카페에
홀로 앉아
한 장의 엽서라도
띄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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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평안을 위하여

김윤진

머리 속이 맑게 가셔지는 것 같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작은 웅덩이를 파고드는
소심함이 늘 문제였다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힘든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고
먼 훗날을 내다보며
트인 가슴으로 살고 싶다

편안해지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아끼는 시간을 갖기로 하자
저마다 휴식이 필요한 지금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삶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들을
피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명한다
자유로운 심신으로
잠시라도 쉬며 행복 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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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하늘아 바람아

김윤진

가을을 합창하는
하늘아, 바람아
사랑도 겸손해지고
갈대도 손사랫짓하며
어여삐 반기는 가을인데
마음 한구석은 까닭도 없이
왜 이리 쓸쓸한가

하늘은 더없는 표정이건만
구름은 하얀 레이스 치장하고
미동도 않는 눈치다
흐렸다 개였다
구름 같은 이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하니
한순간 둥둥 부풀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면 어쩌누

풍경으로 고즈넉이 묻혀
나는야, 실개천 좁은 다리
자전거 페달 밟으며
저 멀리 노을을 바라보며 살련다
하늘아, 바람아 가까이 오렴
가을 하늘을, 바람을
이제는 한껏 느끼고 싶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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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커피가 지닌 향기처럼

김윤진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보석과 같은 평온한 휴식이다
커피가 지닌 맛과 향기는
어쩌면 우리 내면의 모습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지적하는 쓴 소리에
열정은 무기력해 지기도 하고
한마디 따뜻한 격려에
예민한 신경도 달콤한 온기로 녹아든다
머그잔 가득 담긴
두어 잔의 감미로운 커피가 차츰 바닥을 보일 때면
어느덧 감성은 깊어지고 건조했던 기분은 향기로워져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바램이라면 그윽하고
온화한 성품을 닮고 싶다
그리하여 커피가 지닌 향기처럼
마음깊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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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청춘 연가

김윤진

꽃잎에 촉촉이 옹글진 이슬처럼
교내 작은 숲엔 속삭임이 있었네
꽃가루 흩날리듯 사랑은 나부꼈지만
건초더미만 무성했던 숲길

파릇하게 새순 돋아난 어린 나무
뿌리째 다가서는 망울 하나
우린 그렇게 만났었네
캠퍼스 가득 울리는 음악처럼
멋모르게 퍼져가는 환희
나실 나실 여윈 청춘이었지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꽃향기만으로도 활활 타오를 듯
동화 속 스냅사진 두어 장처럼
노래 한 소절 합창하곤
새털구름처럼 숲길 저편으로 흘러간

먼 훗날 만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여겼거늘
그것이 작별이 되었구나
숲길은 멀고 깊은 줄 알았는데
어느덧 노을빛 바닷가
아스라이 새벽 물안개처럼 희미해진
내 청춘의 노래 한 소절 같은
그런 사랑이 내게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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