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봄샘 시 모음 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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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봄샘 시 모음 50편

최봄샘 시 모음 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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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리라

최봄샘

전장터의 꼬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늪은 안식처일 수 없다
거만한 물줄기로 밀려오는 파도앞에
날마다 허물어지던 자존심

가리라
한번만 날아보자고
벌레울음 삼키며 그토록 날개짓 하면 할수록
거미줄에 휘감기던 이 기슭 박차고 가리라

겨울이 진군해 오기 전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속삭임이 뼈가 되어 일어서는 밤
어둠살 속 깊이 손 뻗어
불빛 하나 휘어잡고 가리라

가리라,
햇살이 빗어 내리는 가지마다
붉게 열릴 찬란한 마지막 향해
짐승의 포효마저 채찍질하며
너울 너울 그렇게 나는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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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을꽃

최봄샘

기다림 하나로 목축이며
펄럭이던 청춘의 깃발 마름 지어
단풍물 고운 옷 지어 입고서
느슨한 오후를 밟고 선 뜨란에
불혹 비추이는 햇살이 고맙다

산다는 것은
찬서리 내리기 전
어지러운 발자욱 지워내며
건조해지는 피부에 유효기간 알 길 없는
수분 화장품을 곱게 먹이며
맘씨 좋은 꽃 한 송이 피워내는 것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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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울아 거울아

최봄샘

티끌 한 점 지나칠 수 없는 결벽증인가
두 눈 마저 가리고 싶어
아니 차라리 눈알맹이를 꺼내 씻어내고 싶어

두 눈이 쓰라려도
보이는대로 담아줘야 하는 이 굴욕
그럴싸한 껍데기에 싸인 썩은 내장들을
차마 어찌 다 비추이랴

술레잡기 술레잡기
어지럽다
깨지면 그만인 몸
끝 없이 자라나는 혀를 잘라내며
그저 눈앞에 비춰지는 것들만
믿어 주기로 질끈 눈 감아 버린다

잘라낸 혀들이 붉은 울음 우는 밤
꾹꾹 밟아대며 거울앞에 서보는 여자
하, 빛깔만 먹음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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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울 나무

최봄샘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여자를 감싸는 햇살 밟으며
오고야 말았다
그는

그 남자가 여자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낸다
흩어진 옷가지들
어지러운 초겨울 언저리에
망부석이 된 그녀

한 세월 누군가의 뜨거운 그림이었던
한 시절 누군가의 시원한 그늘이었던
이제는
다 비워진 여인

삭정이가 되어버린 가슴에도
돌아올 그님 있어
둥지 트는 북풍마저 음미하며
저리도 도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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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겨울나기 1

최봄샘

빈혈기로 비틀대며
내려와 부딪히던
햇살의 몸부림도
잠시 잠든 밤

마른 바람이 몰고 오는
북극 소식에
귀 기울여 보기도 하며
겨울 가지에 걸어 둔
작은 둥지에
알을 품고 기다리는
봄바라기 작은 새

아랫목에 묻어 둔
설익은 봄
살짝 들춰 보기도 하며
깃털마다 숨겨 둔 불씨들
하나씩 꺼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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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겨울나기 2

최봄샘

문풍지를 바른다
틈새마다 스며들어
찔러 대는 바람에도
오늘은
imp 폭풍에 삭으러 들고

아랫목에 묻어 둔불씨 하나
다독 다독이며 문풍지를 바른다
동상 같은 짐꾼들
쭈그린 모퉁이마다
힘 찬 심장 소리 담아
누구인가 실어 보내는 노래
봄은 멀지 않다네
봄은 그리 멀지 않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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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 여자의 시

최봄샘

떨리는 손으로
핀셋을 들고
어질러진 나사들 하나 하나
눈물에 씻어
비워낸 가슴에 조립 한다

억눌린 아픔의 휴화산에
불 당겨지면
굳어 있던 붉은 혀들
무녀가 되어 흐느적인다

오늘밤도 어딘가 어긋나기도 하는
부품들을 달래다보면
또 다른 분신들을 만나
도피자의 호수에
몸을 던진다

우산도 없이
빗물에 젖어버린 날
잘 달구어진 언어들 앞에서
몸을 쪼이며
조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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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금지 된 인연


최봄샘

가슴속에 냇물이 흐른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면
하루의 발걸음 무거울 때
깊은 밤 문득 잠에서 깼을 때
같이 할 수 없는 아픔
쉼 없이 솟아나는 그대 생각에

저 꽃구름에 실어 둔
목숨같은 바램들
아주 조금밖에 못 보여준 마음
눈물은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될 줄이야

가고 또 가도 이을 길 없어라
가슴에 아직 남은 체온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잊을까봐
아니 그런 날 오지 않을지도 몰라

긴밤 지샌 한 송이 야생화같은
그대 모습 흐린 달빛에 지워질까봐
한 자루 촛불 밝혀 지새는
가슴에 뜨거운 강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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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꿈꾸는 애벌레

최봄샘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 꽃밭에
밤이슬 내리면
금속성 달빛 타고 내려온 검은 바리톤
잿빛 뇌관을 건드린다

내장 쥐어짜는 섹소폰 울음
희뿌연 공간에 부서지는
허물 같은 비명
왜 나는 나비가 되지 못하는가?

오늘밤도 깨지 못한 껍데기에 갇혀
발작하는 보랏빛 히스테리가
달빛에 끌려간다
휘청거리다 자지러진다

그림자도 없는 애벌레 몸짓,
왜 나는 나비가 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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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의 아침

최봄샘

햇살이 두드리는
창문을 열면
이슬 떨며 반기는 이름 하나
반짝이는 두 손 내밉니다

밤새 고뇌하던 젊음도
넘쳐서 흐르던 강물도
꿈을 잉태하는 바다로 태어나는 아침

작은 깃 여미며 올리는 첫 기도
메마른 등허리 다독여주는
님의 손길에 뜨거운 파문입니다

오늘도 나는 한 그루 해바라기
고개 숙인 심호흡에
기지개 켜는 낯익은 꿈이
어느새 다가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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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 이름은

최봄샘

햇살이 미끄럼 타는 창가에서
호수를 마십니다

팔도 잘리우고
다리마저 잘리우고
족보마저도 잃어버린 나
나의 님은 오늘도
꽃을 피워내라
꽃을 보여달라 하십니다

뿌리내릴 그 날까지 나 달려가는 거야
꽃 피울 그 날이 저기 달려오고 있어
부활하는 그 날이 오는 거야
토막 난 내 몸뚱이
나비처럼

멍에가 꽃으로 환생할 그 날까지
행운을 부르는
내 이름은
내 이름은 행운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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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두 얼굴

최봄샘

내 가슴에는
두 개의 심장이 뛴다
창가에 부딪히는 낙엽소리에도
흐느껴 우는 한 쪽과
제욕심만 채우려는 무딘 한 쪽
철 없이 잘도 뛰고 있다

달도 별도 꿈속에 잠긴 밤
지킬과 하이드의 전쟁에
터질 듯한 이 가슴

하나의 심장만 갖고싶은
소원 하나가 반짝
어둠속에 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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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뜨락에서

최봄샘

이 너른 세상천지에
아주 작은 귀퉁이 조각 하나
내게도 있다는 것
얼마나 가슴 벅찬 축복인가
키 작은 몇 그루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고 새들 깃드는 낮은 공간

봄여름 가을 지나며
겨울도 지나는
때론 폭우에 씻기우고 바람이 할켜도
시가 자라나고 노래가 머무는 자리
꽃불 밝혀드는 그대가 있어

탕자의 도시를 맴돌다
눈 감아도 눈을 떠도
돌아오면 언제나 이 자리
내 영혼의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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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막내딸 입학식 날에

최봄샘

불 하나 더 밝혀 놓고
지켜보아야 할 손바닥만한 모습
새 책가방 어루만지며 기다리던 날
헤집어진 가슴 다독이며 오늘은
그 작은 코에 조금 더 큰 멍에를
바꿔 끼워 주었다

32년전 그 날
개나리 진달래 서둘러 달려 올 때
뻐꾸기 노래 소리 어린 잠깨 우니
하얀 수건 가슴에 달아 주던 우리 엄마
그렇게 날 바라보셨지
바다 만한 학교 마당 허연 서릿발을
붕어빵 같은 두 발로 밟고 가던 계집아이
아직도 운동장 한 가운데서
노느라 바쁜 그 계집아이를
흰눈 내린 머리카락 빗으며 지켜 주신다
지금 내가 따라가고 있는 저편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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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먹이

최봄샘

찐밤을 까먹는다
우유빛 형광등 아래서

갈 빛 짙어 가는 도척 마을 야산
풀잎 사이 혹은 마른 돌틈
매끄러운 몸 빛나던 아람 밤톨들

한 톨 한 톨 탄성마저 주워담던
두 아이와 함께 초저녁 TV를 보며
보오얀 살점을 파먹는다

아빠는 아직 부재중
무거운 눈꺼풀 아래로
잠깐 다녀온 꿈속여행
그 산 속 다람쥐 네 식구
먹이 찾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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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메아리

최봄샘

수화기를 든다
손가락 핏줄 속 깊이
흐르고 있는 너의 번호
열리지 않는 문을 노크하듯
안타까움 안고 단추를 누른다

길고 긴 선 저 끝
아직 대답 없는데
달도 별도 뜨지 않는 시커먼 하늘에
아픈 비명만 질러대는
죄 없는 벨소리

또 다시 전화를 건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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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목련꽃

최봄샘

무어 그리 급해서
일찍이도 성급히 얼굴 내미느냐

아직 채 더워지지 않은 가슴에
긴긴 기다림이 익어 부풀어
꽃등불 되었느냐

너의 향기 따라
나의 님이 오시는 구나
너의 길을 따라
나의 노래도 돌아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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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바닷가 노을 즈음

최봄샘

저만치 지친 태양이
붉은 유언을 쓰고 있는
바닷가 노을 즈음

시한부 해안선 끝
껍데기만 남은 바닷고둥 하나
어디서부터 떠밀려 왔는지
구토하며 누워 있구나

반백년 비워낸 몸뚱이
바다의 혀가 핥다 가면
치열했던 모래톱의 기억들이
멀미를 한다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들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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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밤비

최봄샘

북소리가 울린다
속살까지 헤집고 드는
탄식의 굿판
망각의 주사액을 꽂아둔 환부가
다시 욱씬거린다

잡초처럼 꺾이고 밟혀도
가슴에 뼈 하나 세우며
꿈을 깁던 투명한 밤들
달려와 유리창에 부딪치며
'일어나라, 일어서라'
부르고 있다

화석이 되어버린 기억들이
껍질을 깨는데
어둠속에서 커다란 손이 나와
밤의 난파선을 쓰다듬는다

지금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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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벗꽃놀이

최봄샘

춘야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
달착지근한 훈풍에 춤 추기 시작하면
모든 창문들은 입 벌려
이거리를 삼킨다

꼬리 치는 옷자락에
끌려가는 마당쇠들
이미 그녀 살내음에 몸이 녹아
송두리째 녹아

꽃비에 물 오른 춘정







흩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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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봄 봄이잖아요

최봄샘

이제 눈을 떠 일어나 봐요
겨우내 봉해 두었던 창문 열어요
개나리 목련 진달래...
꽃들을 먼저 보여 주시는
그 분의 향기가 온 천지에
내려오고 있어요

떠나지 말아요
가던 발걸음 다시 돌려봐요
저기 꽃이 지던 자리
저기 구름 울던 자리
초록물빛 들이며
그대 숨결 기다리잖아요
그대 손길 기다리잖아요

이젠 그 눈물도 닦아요
봄이예요
꽁꽁 숨어 울던 강물도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던 소녀도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불던 소년도 초록빛 웃음 싣고 달려오는
그리도 기다리던

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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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봄밤

최봄샘

어느 여인네 시장 보따리에 실려서
냉이 한 웅큼 넣은 토장국 내음 가득한
그 집에 스며들었다.

작은 뜨란에
달큼하게 모여드는 바람결 따라
하나 둘 채색되는 흑백 사진들이 전하는
오래 된 이야기 엿들어 본다

먼 나라에서 달려온 별들
등불같은 이름 하나씩 지어질 때
오래 묵힌 실타래
한올 한올 풀어가는 봄밤
생과부 농익은 한숨에 꽃멍울들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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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비 개인 어느 날 오후

최봄샘

한바탕 소낙비의 단 입김이
아직 창가에 묻어 있는
거실에 앉아
찻잔 속에 담긴 하늘에
나를 포갠다

수채화 물감을 맑게 풀어놓은
샘물 같은 한 폭 그림
그새 목욕을 마친 숲 속에선
떠나는 여름을 붙잡고
떼를 쓰는 듯한 매미들 노래

사람이 그리워
정녕 사람이 그리워
이 시간 나의 바램은 하나
이마를 맞댄 집집마다
오늘밤엔 온 세상 밝힐
등불 내어 걸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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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비에 젖어

최봄샘

어지러운 장단에
맨몸으로 춤 추는 하룻밤 축제
그 열기에 마취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심장에
최면을 건다

그 언젠가 나 스스로 짖이겨버렸던
꽃잎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나
떠다니는 습기 가득한 공간
모태속 태아처럼 유영 즐기다
일기장 갈피에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하얀 그 이름이여

다 녹지 못하고
생살 뚫고 나오는 얼음조각들
숭숭 구멍 난 가슴에
다시 쓸어담는다

이제 그만
안개 검은 저 바다에
투명한 점 하나로 부서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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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비와 여인

최봄샘

시한폭탄같은 비를 품고도
웃고 있는 하늘
거울앞에 오래 앉아
화장하는 여인의 가슴엔
묻어둔 이야기들 두꺼운 세월 뚫고
뾰족이 얼굴 내민다

비가 쏟아지겠지
조금 더 찐하게
빗물에 씻겨버릴지도 모르니까
조금 더 야하게
널 만날것 같으니까
백치 여백은 들키고 싶지 않아
장미빛 입술로 선명하게
너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

영화처럼
빗물 가득한 거리에서의 해후라면
지워질지도 모를 이 가면
그래도 더 두껍게
색체를 입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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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비워내기

최봄샘

진공 유리 상자안
혼자이다
그리도 입안을 찌르던
한 마디 혓바늘마저 뽑아버린다

부러진 초침을 헤아리며
너를 기다리는 것
나를 갉아 허기지게도 했지만
한 톨 자존심마저 바스러뜨린다

비로서
떨리는 평온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배반이 감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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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빈 의자

최봄샘

나 지금 이렇게 가난하여도
너를 위한 의자 하나만은
준비하고 있어
잿빛 바람만 일렁이던 그 거리에서
네가 주었던 꽃 한 송이
아직 향기로 머물고 있어
곡예사로 살아오는 가시밭길에서도
뜨겁게 타오르는
한 줄기 염원 있었지
너와 나의 영혼에 낀
푸른 이끼 씻어내고
희디흰 뼈끼리 부빌수 있기를

그리움보다 더 붉은
노을이 울어 울어
나 이렇게 가난하여도
저린 가슴 언저리에 돋아나는
네 이름에 물을 준다
☆★☆★☆★☆★☆★☆★☆★☆★☆★☆★☆★☆★
《28》
사람아

최봄샘

사람아 우리
이슬비가 되자
끝 모르는 까만밤
등불 하나 밝혀놓고
기다림으로만 목 축이며
견디는 이의 타는 대지에
촉촉히 뿌려 주는 이슬비가 되자꾸나

사람아 우리
강물이 되자
퍼렇게 멍 든 세월 안고
수많은 플랑크톤 가슴에 키워주며
번뜩이는 겨울의 칼날앞에서도
그저 꿈 꾸며
님의 품으로 흘러만가는
강물이 되자꾸나

사람아, 사람아 우리
강가에 젖줄 문
키 작은 나무가 되자
끓어 오르는 바램일랑
잎새로 내어달고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지막 계절의
키 작은 나무가 되자꾸나,
☆★☆★☆★☆★☆★☆★☆★☆★☆★☆★☆★☆★
《29》
새장 속의 작은 새

최봄샘

눈물도 태워 버리던
전성기의 노래들
지금 허공에 묶인 채 녹슬고
굳게 잠겨진 몸 바라보며
갉아 먹히는 가슴
점점 굳어 버리는 날개에
그냥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살점 뜯기는 고문

쪼아야 할 것을 쪼지 못한 채
세월의 볼모에 잡혀
무디어 가는 부리
새벽을 단단히 싸고 있는
껍질만 쪼아댄다

☆★☆★☆★☆★☆★☆★☆★☆★☆★☆★☆★☆★
《30》
숲속 연가

최봄샘

들린다,
싱그러운 바람결같은
그대 속삭임

태고적 목소리로 문 열며 반기는
품속에 안기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아
내 조그만 모습은
한 폭 하늘에 그려놓고
머언 옛날로 돌아가
때 묻은 옷 벗어버리면
한그루 나무 되고
한마리 작은새가 되네

세월 칼날 견디어 온 축축한 본능도
어느사이 둥실 떠가는 솜구름 되니
무겁던 허울마저 한 줄기 바람이 씻어가네
그대에게 차마
고백할 수 없었던 이야기
여기 나뭇잎 엽서에 띄워보내오
☆★☆★☆★☆★☆★☆★☆★☆★☆★☆★☆★☆★
《31》
여자 40세

최봄샘

오랜지빛 립스틱 바르고
시리워지는 강가에 서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치맛자락을 흔드는 소금 바람

울안에 가두었던 이름들
안부를 물어 보며
갈색 향에 취할 수 있는
한 잔 여유 속에서도 문득 젖어 오는
푸른 깃발의 아우성

날카로운 본능마저도 느슨해지는
늦여름 햇발 아래
아직은 설익은 열매들
가지마다 흔들리는데
조심조심 디디고 가야 할 계절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얼굴로 다가오는
당신이 있다
☆★☆★☆★☆★☆★☆★☆★☆★☆★☆★☆★☆★
《32》
연가

최봄샘

이세상 모든 잎새에 맺힌
이슬을 다 모아
그대 빈 잔에 채워 드리오리다
그대 옷깃에 스치는
한줄기 바람 되어 볼까요
그리움 닮은 달빛이나 되어
그대 창가에 머물러 볼까요

지새운 밤들의 깃털 뽑아
이 마음 올올이 뜨개질하여
그대 목에 걸어 드리오리다

멍 든 덩어리 가슴에 매단채
걸어 온 청춘 언덕에
내 상처를 딛고 피어난 꽃이여
이대로 영영 푸른 이불 덮고 잠 든다해도
그대는 내 잠 속에 내리는 꽃비
전설 어디에서부터 시작 된 이야기

그대 가슴에
마지막 푸른 잎새 되리
눈물에 물감을 풀어 쓴 이 편지
이 노래를 당신께 드리오리다.
☆★☆★☆★☆★☆★☆★☆★☆★☆★☆★☆★☆★
《33》
연습

최봄샘

오늘도 바라본다
붉은 아지랑이 저편
아직 높기만 한 봉우리

꿈속에서도 곤두박질 치던
나의 목걸이는
명동 거리 한 복판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더 작아지지 않는 몸
바늘구멍에 디민다
비곗살 빼야 한다
더욱 또렷해지는 의식

그저 연습에 지쳐 버린
시계 바늘마저도 어둠을 안고
비틀거리는데 그림자처럼 찾아오는
하얀 속삭임이여
☆★☆★☆★☆★☆★☆★☆★☆★☆★☆★☆★☆★
《34》
연필

최봄샘

체중이 줄어듭니다
뾰족한 성깔도 무디어 가느라
그토록 검은 핏물 흘릴 때는 빈혈마저
슬픔의 퇴로를 차단합니다

또깎입니다
짧아지는 내 키만 큼씩 오그라드는 명줄
뼈 속 깊은 곳에선 머언 숲 속의
푸르던 전설이 꿈틀거립니다

어느 모퉁이에 버려져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모멸 덩어리 이 몸뚱이 버려짐의 그림자를
베고 누워 눈을 감은 채 오직 작아지는
기쁨을 생각하지요

마침내 달콤한 어둠에 손 흔들며 흙으로
돌아가는 날 꿈속 그리던 님의 품에 안기리니

고향은 언제나 내 심지 속에 별이 되어
반짝 입니다
☆★☆★☆★☆★☆★☆★☆★☆★☆★☆★☆★☆★
《35》
오늘 하루도

최봄샘

새로운 스케치북 한 장 넘깁니다
이 아침 카푸치노 거품처럼
설레임 향기에 젖어 붓을 듭니다

내가 만나게 될 이웃들, 시간과 공간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날이요
내일 열릴 더욱 실한 열매들 그리며
이 하루도 알찬 작품 만들게 하소서

오늘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이들이게 하시고
설사 그러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으스름 저녁 시간엔
아가의 첫 걸음마 회복시켜 주시고
꽃잎처럼 하루 접을때
사뿐히 당신품에 안기게 하사
오늘보다 더 꽃다운 내일을 그리며
순백의 기도 올리게 하소서
☆★☆★☆★☆★☆★☆★☆★☆★☆★☆★☆★☆★
《36》
일출

최봄샘

끈적끈적
피부에 묻어 나는
하룻밤 흔적 지우며
잘 포장된 미련
겨드랑에 숨긴 채
흑암의 자식들
젖은 몸 구부려
떨고 있구나

밤새 허연 이빨 깨물며
이 세상
모든 먹물 다 마시느라
허공을 쥐어뜯으며
뒤틀리던 바다는
지금
옥동자를 낳는다
☆★☆★☆★☆★☆★☆★☆★☆★☆★☆★☆★☆★
《37》
저녁 식탁

최봄샘

겨울을 잔뜩 부려다 놓고
앞마당 뒷마당 지키는
심통 사나운 바람에도
우리의 저녁은 포근하다

작은 울타리에
우리 네 식구
하루의 먼지
서로 털어주며
저녁 식탁에 둘러앉으면
일상의 오만가지 티끌들마저
꽃이 되고 별이 되지

삶의 중심점 위에 서서
온 마음 모은 작은 손으로
저녁상 차리노라면
오늘도 쉴 곳 찾아
창가에 서성이는
어둠 한 줄기마저
불러들여
함께 하고프다
☆★☆★☆★☆★☆★☆★☆★☆★☆★☆★☆★☆★
《38》
조약돌

최봄샘

바닷가 기슭
꿈 꾸는 악동
밀려오는 파도에
이리 씻기고 저리 깎이며
반짝이는 꿈속에 산단다

바람이 들려주는 세상이야기
모든것 다 아는듯한
푸른 하늘의 미소
때론 짓궂은 햇빛에
몸이 뜨거워 뒤채도
소낙비가 식혀주기도 하지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와도
더욱 반짝이는 꿈속에 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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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찬 양 제

최봄샘

어찌 두 손을 모으지 않으리
어찌 두 눈을 감지 않으리
가장 높은 곳 향하여
두 손 높이 드는 자의 눈동자는
천년 깊은 바닷속 흑진주보다 빛나
무아세계로 침전하는 사리들

병든 상처마다
씻어주는 폭포수위에
천사들 날개는 더욱 빛나고
비로서 여기
먼지같던 피조물들 목소리가
찬란한 메아리 생명을 얻는다

주여
이 순간을 멈추게 하소서
양털보다 포근한 당신품에서
상처투성이 내 영혼이
꿈을 꾸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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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첫눈

최봄샘

반가운 편지가 온다

잘 있느냐고
잘 지워냈느냐고
지금 그 나라에도 하얀 잔치가
펑펑 열리고 있다며,

아리랑 고개에서 첫눈 맞이하는 저녁
커피숍 통유리창에 비치는 그 여자,

지워져 가던 기억들이 솜옷을 입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데
하얀 편지가 가슴에 쌓이기 시작한다

이젠 제발 놓아 달라고
아프지도 아파하지도 말라고
메아리 치는 편지는 자꾸만 자꾸만
아직 어지러운 그녀 가슴에 내린다

아리랑 아리랑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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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촛불

최봄샘

종말을 향한
화려한 출발
산화라는 살과 뼈
향내에 질식하는
음모의 싹들
태워 버린 검은 베일의
허물만 굳어 있다

종점은 언제나
완전한 어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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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커피 한 잔의 그리움

최봄샘

그 날 그대가
막 탯줄 자른 청춘
등에 지고 떠난 후부터
두 잔 커피 앞에 두고
홀로 앉은 망부석 되었다

스무 살 기슭에 닻을 내린 설레임
새로운 파도 되어 밀려오던 커피 향
이젠 서른 일곱 고개 넘어가노라니
가슴에 싸아한
이슬만 방울방울

첫사랑 하늘가에 씌여진 편지
한잔 커피처럼 음미하며
작은 호수에 출렁이는
갈색 그리움에 입 맞추면
백색 공간 채워오는
보랏빛 편린들
귓가에 흐르는 안개꽃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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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터미널에서

최봄샘

밀물과 썰물 교차하는 거리
가슴에 안은 꽃송이마다
미련을 숨기며 서 있었다

새하얀 손수건들 나부끼는데
새떼들 부리마다
무언가를 물고
가고 오고
오고 가고

이 도시 어느 갈피에
너를 남겨두고
내가 타고 가야 할 버스
물처럼 흘려 보내며
목구멍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한 마디 말 머금은 채
속절 없이 붉은 꽃잎만
또옥 똑 따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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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하루동안의 방황

최봄샘

어디서부터인가
밀려오고 밀려오는 파도의 주름살들
거품으로 스러질 그런것인줄도 알지만

바람을 꺽으려
바람을 탄다

쳇바퀴 일상에 부서진 언어의 비늘들
끝내 난산을 거듭하는
바람개비 몸짓
항상 돌아오면
싱거운 그자리인것도 안다

허무를 빗질하는 거리마다
다시는 내손으로 주워 담을 수 없는
꿈들이 자라나고
혼자서도 한 하늘만 보며
잘도 자라는 나무 이야기에
귀 기울일줄도 안다

신열에 들뜬 하루의 이마위에
어디선가 우산을 펴드는
어두운 기척
지친 날개 접으려 둥지 찾아가는
썰물의 거리에서
결국
회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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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하얀 기도

최봄샘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음에
감사 드립니다.
다시 새김질하던 티끌들
거둬 가심도 감사 드립니다.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고
다 비워지고 하얗게 지워진 내 이름 석자
사랑한 추억도 미워한 기억도
끓어오르던 젊은 날 욕망마저
흔적 없이 사위어간 투명한 가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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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하얀 밤

최봄샘

잘 못 채운 단추 사이로
밀물같은 하얀 밤이 달려 온다
문득 얼굴 하나 달빛속에 젖어 있다

어지러운 책상위
쓰다 찢어버린 편지지위에도
던져 놓은 누리끼리한 삼류 문예지에도
마시다 남겨진 잔속에도
단잠 접수를 마친 점령군이 앉아 있다

문득
미쳐서 피어 오르는 열병같은 향기
그대
어느 별이 되어
이 밤길 찾아 오려는가

실패에 고이 감아 둔 시간들이 풀려
뛰어가다 멈추다 걸어가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하늘가에 떠 있는 그대

또 하얗게 달려 온다
밀물같은 하얀 밤이

강을 건넌 후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는
긴 머리 여자가
달콤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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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 사람

최봄샘

회색 비에 젖어 버린 며칠이었습니다.
날씨 닮아 지뢰만 밟아대던 어느날
모든 것 이해한다는 끄덕임
작은 미소로 지켜보는
그런 사람 있습니까?

얼음시선에 마음 다치고
그다지 예쁘지 못한 옆모습때문에
오해 받고 해명할 길 없어
불면과 싸우는 밤
나직한 목소리로 사는게 다 그런거라면서
다독여 주는 그런 친구 있습니까?

급정거하는 버스 안에서
넘어져 망신감에 어찌할 바 모를 때
그럴 수도 있는 거라며
솜이불 같은 손길 내밀어 주는 사람
그런 친구 있습니까?

찬 바람 서성이는 창가
사랑한 기억도 슬퍼한 추억도
잔에 부어 나누어 볼 그 한 사람
가을 햇살 닮은 그런 사람
그런 친구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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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해 저무는 강변

최봄샘

21세기에 마취 된 풀잎들이 비틀거리는 북한강변
총천연색 수런거림 들려온다
강변마다 우뚝 선 장승과 돌연변이한 짐승이
통간하여 쏟아내는 오만가지 분비물들
강물은 멍든 얼굴로 울컥울컥 위기를 토한다

난도질 당한 안식처,
한치 피난처도 없는 운명앞에
물고기들 비명 빛살물결로 부서지고
물새들 노래 들리지 않는다

소돔과 고모라성 핏빛 노을 아래
롯의 가족은 어디에 숨어 있느냐
애꾸눈 곱사등 되어버린 물고기라도 낚으려나
저 강태공들,
벌거 벗겨진 강변에 주저앉아 낚싯대 드리운다

아름다워서 불길한 치명적 적요
어디선가 유황불 냄새 뇌수를 찌른다
쓰나미 경보등 울린다
강간 당한 후각을 감싸쥐고
아직 한 뼘 남은 원시림 찾아 나선다

넘어지고 깨지고 만신창이 되어도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이 줄달음 쳐야 한다
뒤돌아 보면 소금기둥이 될 것이다
소알성**까지 뒤돌아 보지 말고
한달음에 달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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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해돋이

최봄샘

끈적끈적 피부에 번진
하룻밤 흔적 지우며
잘 포장 된 음모
겨드랑이에 숨긴채
흑암의 자식들 젖은 몸 구부려
떨고 있구나
밤새 허연 이빨 깨물며
이세상 모든 먹물 다 마시느라
허공을 쥐어뜯으며 뒤틀리던 바다는
지금 옥동자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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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상

최봄샘

낙엽 위에 뿌려진 은빛가루 밟으며
아무도 모르게 나선 길
작은 다리 건너가면
누구의 눈동자인가
보랏빛 신호등

이정표 없는 길
맨발로 다시 걷다보면
어미는 어디 갔나
고막 파고드는 새끼 새 울음

바람은 온몸으로 울어
휘감기는 모퉁이마다
눈물 젖은 그림자가 자라나고
죽어도 잊지 않으려
뼈 속 깊이 손톱으로 새긴
이름들이 달려온다

욱신거리는 상처를 감싼
푸른 속옷 갈아입지 못한 죄
나만의 바리케이트 살짝 치우고 들어가
세월 한 자락 깔고 앉아
혼 불 밝혀 쓰는 또 한 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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