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걸 시 모음 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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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걸 시 모음 51편

박인걸 시 모음 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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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

박인걸

지긋지긋한 한파에
더 이상 시달릴 수 없어
따스한 햇살과 함께
엷은 바람이 시위를 한다.
붉은 띠와 함성도 없이
조용한 혁명으로
양지쪽을 점령하고
서서히 영역을 넓힌다.
도시를 장악했던 빙판과
들판을 차지했던 눈은
기세를 잃은 듯
슬금슬금 자리를 비우고
숨죽이던 시냇물과
움츠렸던 뱁새도
조금씩 입술을 열어
봄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폭력과 무질서를 거부하고
오직 훈풍으로
하지만 결코 쉽지 않게
세상엔 또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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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월

박인걸

사월이 오면
옛 생각에 어지럽다.

성황당 뒷골에
진달래 얼굴 붉히면

연분홍 살구꽃은
앞산 고갯길을 밝히고

나물 캐는 처녀들
분홍치마 휘날리면
마을 숫총각들 가슴은
온종일 애가 끓고

두견새는 짝을 찾고
나비들 꽃잎에 노닐고
뭉게구름은 졸고
동심은 막연히 설레고

半白 긴 세월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 시절
앞마당에 핀 진달래
그때처럼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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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월의 느낌

박인걸

조용히 쏟아지는 금빛 햇살은
주님의 섬세한 손길이며
살랑이며 스치는 연한 바람은
주님의 맑은 숨결입니다.

끝없는 하늘을 우러러
주님의 무한하심을 깨달을 때
의미 없이 바라보던 산들이
오늘은 주님 품으로 다가옵니다.

넝쿨 장미 눈부신 꽃잎에
주님 보혈의 사랑이 가득하고
초록 빛 나뭇잎들마다
성령의 생기가 충만합니다.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평화가
영혼에 맴돌던 두려움을
깨끗이 걷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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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을 나무

박인걸

생기 잃은 나무가
길게 하품을 한다.
잔등을 누르는 세월의 무게
잎사귀들 푸석푸석하더니
누렇게 뜨고 있다.

일제히 새순 터트리며
해맑은 잎 새로
초여름 산하를 수놓던
신록은 한 낱 추억일 뿐
지금은 시간에 쫒기고 있다.

점점 높아지는 하늘
저녁별빛 밝게 빛날 때면
밤이 무서운 것은
찬이슬 흠뻑 맞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늙기 때문이다.

내려놔야 하는 시간 앞에
긴 밤 잠 못 이루며
이는 바람에도 오금이 저려
오늘도 몇 장 잎을 잃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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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간격

박인걸

달과 해의 거리가 멀 듯
사람 사이에도 먼 거리가 있지만
별들이 모여 반짝이듯
가까워 행복한 사이도 있다.

해는 뜨거워 달아오르고
달은 차가워 시리니
둘은 만나면 불행하지만
별들은 서로 껴안을 때 즐겁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임계 거리가 좋다는데
그대와 나의 거리는 어디쯤일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아득하다

좁힐 수 없는 간격이라면
바라만 보는 것만도 행복하니
언제나 그 자리에서
도망하지 말아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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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강물

박인걸

검은 강물을 보면
멍든 상처가 애처롭다.
골짜기 개울을 스칠 때부터
부딪치며 굴러온 삶

여울을 지날 때
먼 여행의 설렘도
가파른 폭포 앞에서
단말마의 비명

별이 잠든 밤에도
멈출 수 없는 의지
때로는 쉬고 싶어도
떠밀리며 살아 온 삶

만신창이의 가련한
꿈도 포기한 지금
바다로 끌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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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강물 인생

박인걸

냇물은 혼자서 지줄 대며 흐른다.
자신이 떠나온 고향을 향해
바쁘게 서두르지도 않는다.

가다가 힘들면 주저앉고
외로운 날이면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메아리를 부르다
고통이 가슴까지 차오를 때면
눈물은 강물이 된다.

굽이굽이 돌고 돌아
때로는 정신 없이 휘둘려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도
오던 길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허연 거품을 내 뱉으며
숨 가쁨에 헐떡이다가
유속에 현기증이 일어도
이제는 멈출 수도 없어

까마득한 옛 시절이
생각마저도 어렴풋한데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개마저 들 수 없이
침묵 속에 흘러가는 인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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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독

박인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허공을 달리는 태양아
어슴푸레한 밤하늘에
외롭게 떠가는 달아

억겁의 세월을
바다에 떠 있는 섬들아
홀로 지내는 고독을
내 어찌 모르랴.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낙타와
둥지서 기른 새끼를 보내고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야

석양을 바라보는
주름살 깊은 노신사
우리는 모두
동류가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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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귀로

박인걸

어둠이 내려앉는
공동묘지 길은
혼자 지날 때마다
철부지는 몹시 두려웠다.

애써 망자를 잊으며
태연한 척 걷지만
발끝에 돌만 치여도
등골이 오싹하곤 했었다.

삶과 죽음 사이는
한 뼘 차이도 안 되는데
맹수 보다 죽음을
더 무서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잖다.
어차피 인생은 귀로
돌아갈 안식처는
어느 무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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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 해 여름

박인걸

포위 된 빌딩 숲에서
세월의 감각마저 잃었던 날
숨 가쁘게 우는 매미 소리에
잠든 추억이 기지개를 켠다.

고향 언덕에 싸리 꽃 흐드러지고
산딸기 대추처럼 익을 때면
앞집 마을 누이는
산나리 꽃보다 어여쁘고

연정 달아오른 소년은
여름 밤잠을 설치고
어쩌다 마주 치면 날이면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고

꾀꼬리 짝을 짓는데
봉선화 꽃 짙어만 가는데
그립다 말못하면서
속으로만 애태우던 그 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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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운 사람

박인걸

여름 장미 꽃 송이에
그리운 얼굴이 살포시 웃고
싱그러운 풀잎에서
그대의 향취가 풍긴다.

흙을 파내 깊이 묻고
강물에 띄워 멀리 보낸 추억
문틈으로 새는 바람처럼
가슴 깊이 파고든다.

스쳐 가는 바람에
잡념을 씻고
고인 빗물에 가라앉혀도
절은 추억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그리움이란
사랑의 다른 언어이며
못 잊는 건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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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리움

박인걸

구름은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는 하늘을 사모한다.
구름의 고향은 대양이고
바다는 하늘이 머물던 곳이다.

태어난 곳과 살던 곳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며
고향엔 탯줄을 묻어 그립고
살던 땅엔 정을 묻어 그립다.

구름은 그리움에
빗물 되어 바다로 흐르고
바다는 안개 되어
머나먼 하늘로 오른다.

서로가 다른 그리움에
머물던 곳을 찾으나
또 다시 윤회하는 그리움
그리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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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림자

박인걸

당신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워낙 수줍음이 많아
언제나 등 뒤에 숨습니다.

당신이 가까이 올 때면
나는 더욱 움츠려들고
당신이 멀어 질 때면
초조함에 뒤꿈치를 높이 듭니다.

당신이 피곤해 잠드는 밤이면
나도 깊이 잠들고
당신이 깨어 날 때면
나도 얼른 일어납니다.

하늘이 흐리는 날이면
내 마음은 캄캄하고
천둥이라도 치는 날이면
당신을 못 볼까봐 방황합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당신을 바라볼 수 없었지만
당신이 밝게 비춘 세상을 보며
나는 한 없이 행복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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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꽃이 지던 날

박인걸

꽃이 져도 날은 맑네.
하도 많이 지니 이찌하랴.
바람이 없어도 꽃은 지네,
때가되면 뭔들 안질까

지는 꽃을 붙잡을 수 없네.
붙든다고 그 자리에 머물까
지는 꽃은 져야 하고
피는 꽃은 피어야 하네.

꽃 진다고 새는 안 울고
떨어진다고 비도 안 오네
피었다가 지는 꽃은
질줄 알고 피었다하네.

해도 지고 달도 지고
활짝 피었던 사람도 지네.
어제는 고왔는데 오늘은 지네.
아무 말 없이 떨어지네.

쓸쓸히 지니 가엽지만
피는 꽃이 있어 위로가 되네.
그럴지라도 지는 꽃에
서러운 마음 감출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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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꽃잎 사연

박인걸

꽃잎에 앉아 숨 거둔 나비
말없이 지는 분홍 꽃잎
필시 어떤 사연이 있으나
가슴에 묻고 가버린 넋이여

짧게 살다 간 꽃 잎
눈물 핑 돌게 하는 뒷모습
한 줄 사연 남기지 않아도
겪어본 사람은 알만하다.

긴긴 삶의 뒤안길에
사연 없는 이 어디 있으랴
부딪치는 아픔 속에
벽돌처럼 쌓인 숫한 사연들

떠날 때도 말없이
뚝 떨어지는 꽃 잎
아무런 사연 없다는 듯이
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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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무가 사는 법

박인걸

나무는 평생
태어난 자리에서 산다.
음지 던 양지 던
혹은 벼랑이던

나무는 평생
자기 색깔로 산다.
피고 지고 다시 펴도
언제나 그 색깔

나무는 언제나
어울려 산다.
혼합 목들 간에
손과 손을 맞잡고

나무는 바람이 흔들어도
곧게 서 있다.
뿌리로 대지를
든든히 딛고서서

나무가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은
서로간 미워하지 않고
어울려 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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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려놓음

박인걸

내려놓음이란 책을 읽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려놓기는커녕
움켜쥐고 살아서다.

내 모든 삶의 무게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하늘을 날 듯 가볍게
편안히 살 수 있으련만

내려놓으면 빼앗길까봐
비우면 손해 볼까봐
작은 것 하나까지도
악착같이 붙잡고 살았다.

깨지지 않은 자아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내려놓는 걸 두렵게 해
아! 불쌍한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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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눈꽃

박인걸

나무들 가지마다
몇 번이나 눈꽃이 피고 져도
봄은 올 기색이 없다.
차갑게 피는 눈꽃은
세상을 물들일 뿐
생명을 움직이지 못하고
눈꽃에 마음이 들뜬 자들은
잠시 후 실망을 내뱉고
향기 없는 차가운 가루에
낭만은 녹아 내릴 것이다.
눈꽃은 꽃이 아니라
누군가 지어준 이름일 뿐
죽은 별들을 화장한
가루일지 모른다.
눈 내린 가슴마다 무덤이 되고
꽃이 죽은 길거리는
차들도 무서워 설설 긴다.
그래서 눈이 내리는 날이면
세상은 숨을 죽이고
폭설 아니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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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모순

박인걸

우중충한 날에도
가슴이 따뜻한 날이 있고
화사한 날에도
마음은 어둘 때가 있더라.

푸른 것이 검게 보이고
검은 것들이 희게 보이는 역설은
논리의 모순이 아니라
마음의 반작용이리.

오늘은 겨울비가 오는데
찬바람이 부는데
음습함이 충만한데
마음에 태양이 빛나는 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기다린
당신이 오신다기에
가슴은 설레서이며
감정은 북받쳐서일 것이다.

당신만 내 곁에 있으면
슬픔도 기쁨이 되며
아픔의 고통도 웃음이 되는
설명 못할 역설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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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목표

박인걸

겨누지 않은 화살은 모두 빗나가고
훈련되지 않는 궁수는 빈손으로 돌아간다.
멀리 있는 표적은 다가가서 쏘고
가까이 있는 과녁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기술이 탁월해도 바람을 조심하고
똑같은 거리도 조석마다 다르다.
갈지 않는 화살은 과녁을 뚫지 못하고
늘어진 활시위는 무기가 되지 못한다.

움직이는 물체는 눈빛에 달렸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미물도 비웃는다.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내가 과녁이 되니
살고 죽는 것이 기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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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람

박인걸

싸리 꽃 핀 산을 오르던 날
한 줄기 바람이 이마를 스치며
시원한 존재임을 각인시킬 때
나는 바람에게 속지 않는다.

굶은 창자의 비명을 들으며
얼어붙은 대지를 걸을 때
찢어진 겉 옷 사이로
살을 찢던 바람을 나는 알고 있다.

출처도 종착지도 모를
이리저리 돌고 돌아
맑은 눈에 모래를 뿌리고 떠나는
바람에게 속지 않으리.

눈이 시리도록 피어 올린
능소화 꽃송이를 내동댕이치고
천년 백송의 허리를 사정없이 꺾던 날
나는 바람의 난폭함을 보았다.

두 얼굴의 표리와
철면피의 가증함을 감추고
꽃향기 물고와 살며시 유혹하는
바람아 나는 너의 정체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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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비움

박인걸

숲은 해마다 한 번
자신을 깨끗이 비운다.
가졌던 모든 것을
사뿐히 내려놓는다.

내려놓는 충만함
비움으로 채워지는
역설의 복음이
겨울 숲에 넘친다

움켜잡으면 추하고
놓지 않으면 뺏기고
주지 않으면 썩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안다.

빈손으로 서서
가난 해도 당당한
나목들의 굳센 의지가
신앙만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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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사월

박인걸

사월 산천은
붉게 달아오르고
대지의 심장은
힘차게 박동한다.

목련꽃잎 내려앉고
진달래 활짝 웃고
살구꽃 나비되니
라일락이 기다린다.

나비는 길을 잃고
바람도 방황하며
산새도 꽃에 취해
온 종일 혼곤하다.

짧게 지나가는
현란한 꽃향기에
몽롱한 나그네도
잠시 취해본다.

나의 그대는 지금
어디메 있는 거요.
곱게 핀 꽃 한 아름
당신께 주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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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서러움

박인걸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처량하게 울기에
사연을 물어보았더니
서러워서 그런단다.

젊은 새들은
자기들 끼리 짝을 짓고
친구 새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단다.

새끼를 돌보다
날개를 다쳐
날 수 없는 슬픔보다
버림받은 아픔에

안개 낀 숲에서
목이 쉬도록 울었는데
아침 햇살이 비처와도
마음은 여전히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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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수선화

박인걸

눈이 아리도록 고와도
사랑해 줄 이 없으면 고독해
목을 길게 빼들고
오늘도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리움이 차 오르면
얼굴은 점점 야위어 가고
소슬바람에도
힘없이 스러질 것만 같다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은
건드리기만 해도
돌담 아래 외로이 서 있는
수선화 닮은 여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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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숲의 상처

박인걸

멀리서 너를 바라볼 때는
아름답기만 했다.
때마다 새 옷을 입고
철 따라 치장을 하기에
호강을 누리며
고생이라곤 모르는 줄 알았다.

가까이서 너를 대하곤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얻어터진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에
몹시 애처롭기만 하다.

즐기며 살아온 세월이 아니라
견디고 버티며
만신창이가 된 몸을
얼룩진 붕대로 싸맨 채
눈물에 젖은 옷을 입고
살아 온 삶이었구나.

풍상이 할퀸 상처가
덧나고 또 덧나도
아픔도 이력이 난 듯
소리 한 번 못 지르는
찢어진 나뭇잎들을
가을 햇살이 쓰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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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십자가

박인걸

저물던 조선 하늘에
십자가 처음 달렸더니
백년 세월 붉은 십자가
서울하늘이 못자리다.

하늘 사람이 달려 죽어
쳐다보는 자마다
하늘 사람이 된다더니
수효가 너무 많아
효능이 의심되고

울긋불긋 네온사인
주점 빛깔 흡사하여
세속과 혼합된
복음의 상업화 부끄럽네.

숭고한 십자가는
죽어야 사는 진리의 웅변
지고 가라는 당부 외면한 채
매달아 놓고 사람을 모으는
십자가 없는 십자가여!
본질은 사라진 껍데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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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아침 햇살

박인걸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맑은 아침 햇살이
집무실 가득하게
평온으로 채우고 있다.

인사말도 없이
자신의 의지로 들어와
마음 가득 부어 주는
흘러넘치는 평화

영혼 깊은 곳에서
맑은 가락을 자아나고
따스한 손길로
본성적 선을 일깨운다.

어둠을 몰아내고
희망으로 채워주는
아침 햇살은 과연
누가 보낸 선물일까
☆★☆★☆★☆★☆★☆★☆★☆★☆★☆★☆★☆★
《29》
아픔

박인걸

이 세상에 아파보지 않은 이 있으랴
눈물 흘려보지 않은 이 있으랴
잠 못 이루며 긴 긴 밤
신음하지 않은 이 있으랴
흘러내리는 강물은
누군가 쏟아낸 눈물은 아닐까
휘젓는 바람은 아픈 이의 한숨은 아닐까
어제 밤하늘을 찢던 섬광은
아마도 아픔의 고통을 참지 못한
어떤 이의 비명이었으리.
울고 싶으나 울 수 없고
소리치고 싶으나 소리칠 수 없어
가슴 깊이 묻은 아픈 사연이
꿈틀거릴 때마다 바늘처럼 찔러
상처에 고름이 잡힌 이 많으리.
눈 위에 눈이 포개고
낙엽 위에 낙엽이 쌓이듯
누적 된 삶의 아픔들이 누르는 중량에
만성질환자의 고통만큼이나
처절함에 몸서리쳐도
아픔은 삶에 운명과 같아
콩팥에 박힌 돌멩이 같아
수술 할 수 없는 불치병이라면
아픔도 가슴 한편에서 키워야 하리
눈감는 날 까지 끌어안아야 하리.
☆★☆★☆★☆★☆★☆★☆★☆★☆★☆★☆★☆★
《30》
어떤 삶

박인걸

겨울에게로 성큼성큼
가을이 걸어 들어간다.
정면으로 승부하지 않고
일시적 포로가 되는 것이다.

옷을 홀랑 벗고
두 손 들어 항복하는 나무들
칼바람에 하염없이 울며
겨울의 수인이 되더라도

무모하게 대항하거나
어리석게 삶을 포기 할 수 없어
지금은 수치스럽더라도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백사장에 놓인 고깃배도
밀물에 뜨는 날이 오고
터널 저 편에 새 세상이 있으니
절망하지만 않으면 기회는 또 온다.
☆★☆★☆★☆★☆★☆★☆★☆★☆★☆★☆★☆★
《31》
억새 풀

박인걸

가을 억새 풀 섶에 서면
나도 억새인 걸 깨닫는다.
찬바람 부는 비탈에서
이리저리 쏠리며
억세게 살아온 세월

예리한 칼날 세우고
스스로를 베며 참아온 나날 들
피맺힌 마디에서
아픈 비명이 들려온다.

짙푸른 젊음
꼿꼿한 자존심도 사라진
휘주근한 풍경은
힘든 삶의 흔적이다.

석양의 긴 그림자
무엇 위해 견딘 세월이던가.
고운 단풍 낙엽 될 적에
스스로 스러질 억새풀이여
☆★☆★☆★☆★☆★☆★☆★☆★☆★☆★☆★☆★
《32》
여름 들판

박인걸

풀꽃 향기 바람에 일렁이는
그 내음에 내 영혼이 갇힌다.
가슴을 초록으로 염색하니
마음은 풀처럼 낮아진다.

거칠 것이 없는 시야에
잔잔한 바다보다 더 아늑한
근심하나 없는 자유가
풀밭 위에 나를 살며시 누인다.

여기에 참 행복이 있구나.
세상에는 없는 행복이
들볶이지 않는 넉넉함이
풀밭에 오롯이 쌓여 있구나.

꽃은 꽃에게 말하고
풀은 풀끼리 몸을 문지르며
서열이나 등급이 없으니
여기가 바로 그곳이로구나.

나 여기에 이대로 주저앉아
언제까지나 풀처럼 살고 싶다.
근심걱정 모두 잊어버리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싶다.
☆★☆★☆★☆★☆★☆★☆★☆★☆★☆★☆★☆★
《33》
여름 풍경

박인걸

여름 풀밭위로
개망초 꽃 파도처럼 일렁이고
약탕기 한약 달이듯
섞인 풀꽃 향기 진동한다.

밀은 이미 익었고
감자도 영근 알을 토해낸다.
강낭콩 넝쿨 처마까지 뻗고
옥수수 볼기가 통통하다.

여름 한낮은 화덕이고
빳빳하던 미루나무도 지쳤다.
화살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산새들은 놀라 달아난다.

땀방울이 등솔기로
도랑물처럼 흐를 때면
하얀 이빨을 드러내는
동해 바다가 마냥 그립다.
☆★☆★☆★☆★☆★☆★☆★☆★☆★☆★☆★☆★
《34》
예감

박인걸

어느 날 내 곁을 스치는
너의 바람결과
우연히 마주친 너의 눈빛
여러 번 벨이 울린 후
착신번호를 읽으며
마지못해 수화기를 들고
겸연쩍은 수식어로
머뭇거리는 대답에서
마음이 떠났음을 예감한다.
한편의 영화 장면처럼
스크린을 가득 채울 스토리가
가슴 깊은 곳에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데
식어 가는 난로처럼
임계거리를 벗어나
도주거리를 걷는
너의 발자국 소리는
내 심장에 동침을 꽂는다.
☆★☆★☆★☆★☆★☆★☆★☆★☆★☆★☆★☆★
《35》
유월 아침

박인걸

풀 잎 향기가
도시 창문을 넘어와
미세 먼지 없는 아침을
상쾌하게 엽니다.

젊음보다 더 붉은
넝쿨장미 꽃 불타고
동해만큼 푸른
초록 유월이 반깁니다.

그 때 상흔은
기억너머에 묻고
역사의 잔상도
푸른 숲에 묻었습니다.

뿌리까지 검푸른
활엽수들의 기운처럼
풀 냄새 가득한
가슴이고 싶습니다.

지천으로 핀 들꽃과
보랏빛 제비꽃 추억이
녹음 짙은 유월 아침
나를 풀밭으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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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인생 역에서

박인걸

침묵은 쇳덩이만큼 무겁고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할 때
뿌려대는 빗줄기에
젖은 나뭇잎 가슴위로 뒹군다.

삶의 숫한 인생 역에서
더러는 맞이하고 보내야 했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눈 가에
깊은 우수가 드리운다.

헤어지지 않을 만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날을 잊고 살았기에
함께 했던 날이 행복하였으리.

기적 소리에 그대를 실어
머나먼 길로 떠나보내지만
여기 서 있는 내 영혼은
언제나 그대 옆에 붙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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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저녁노을

박인걸

툇마루에 앉아
불쑥 솟은 앞산으로 지던
까무러치리만큼 황홀한 노을을
아직도 잊지못해하는 까닭은
너를 척애(隻愛)했던 애련의
가슴 깊은 상처(傷處)가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탓이리.
채색되지 않은 백지에
처음 그려진 너의 초상이
도나우 강줄기만큼이나 긴 세월에도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아
노을이 짙은 날이면 덧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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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저녁연기

박인걸

차분한 어둠이
산등성에서 마을로 걸어올 때
굴뚝 위로 오르는 연기는
어둠과 조용히 섞인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뒤로하고
저녁 하늘을 맴돌다
기억들조차 허공에 흩뿌리고
소멸의 세계로 걸어간다.

아직 타버리지 않은
숱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안고
어디론가 떠나야하는
그 뒷모습이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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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적목련

박인걸

오로지 한 그루
뒷마당에 홀로서서
긴 긴 봄밤에
빨간 아픔으로 핀다.

그리움 가득물고
몸을 비틀어도
먼 섬에 유배된 듯
매우 쓸쓸하고 외롭다.

가슴은 붉게 멍들고
꿈은 무너지고
고독은 가득 차올라
혼자 사는 노인이다.

무거운 한숨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봄비 내리던 밤에
서럽게 지는 적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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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주님 감사합니다

박인걸

한 쌍의 비둘기처럼
오래된 둥지에서 아내와 함께
오순도순 살아온 날을 감사합니다.

뒷바라지 힘들어도
현관에 뒹구는 자식들 신발을 보면
마음으로 기댈 수 있어 감사 드립니다.

아침마다 깨어날 때면
아직도 내 심장이 뛰고 있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서로를 아껴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이웃들과
언제나 함께 있어 감사합니다.

햇곡 밥을 지어
푸성귀 반찬을 얹어 먹을 때마다
풍성한 양식에 감사 드립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주님의 목숨과 나를 맞바꾸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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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진달래 꽃

박인걸

삼천리금수강산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매년 눈물로 피는 꽃이여!

임진왜란에 전사한
젊은 병사의 선혈과
병자호란에 쓰러진
무명용사의 영혼들이
봄이 오면 산과 골짜기에
붉은 진달래로 다시 핀다.

삼십 육년 강점기와
육이오 때 죽은 넋들이
슬픈 꽃망울을 터트리고
이 땅에 자유를 위하여
조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숭고하게 스러진 젊음들이
고독함으로 피는 꽃이여!

독제자의 군화 발과
강포자의 세력에 짓밟혀
억울하게 횡사한
망자들의 영혼이
따뜻한 햇살아래 모여
소복하게 피어난 불쌍한 꽃이여!

그들 어머니의 영혼들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진달래 꽃 위를 서성일 때
유난히 밝은 햇살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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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철쭉꽃

박인걸

철쭉이 핀다.
핏빛으로 핀다.
사월에 죽은 영혼들이
눈물을 흘리며 핀다.

꽃잎처럼 떨어져간
새파란 젊음들이
사월이 오면 길섶에
붉은 피를 칠한다.

사랑을 위해 쏟았던
숭고한 생명의 액체가
붉은 눈물로 튀어
산야를 뜨겁게 물들인다.

일찍 사라져간
그리움의 사무침이
못내 아쉬워
눈부시도록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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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첫눈

박인걸

첫눈을 맞으며
마냥 좋아 날뛰던
그 시절 추억도
이제는 희미한 그림자로
황혼이 내려앉아
찬바람에 뼈가 시린
수척한 나그네는
눈이 와도 감격이 없다.
가로등 언저리에
벌떼처럼 나는
순백의 눈발을 볼 때
그녀를 떠올리며
가슴 설레던
심장의 고동소리 대신
이제는 눈길을 걸으며
숨이 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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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초여름 숲

박인걸

여린 갈잎이
미풍에 하늘거리고
이름 모를 잡초들
짙은 향을 풍기는

초여름 숲에 누우면
몸은 구름 위로 뜨고
마음은 무아의
원인간으로 돌아간다.

신은 인간을
숲에서 빚었으리.
보드란 흙에
풀잎 향을 섞었으리.

숲에만 오면
순한 양이 되고
어머니 품보다 더 편안해
언젠가 영원히 돌아갈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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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파 꽃

박인걸

누군가 떠 받쳐 주거나
기댈 수도 없이
무너진 신전기둥처럼
홀로 서서 견디면서도

바다빛깔로 온몸을 염색해
젊음보다 더 싱싱하게
잔디밭 보다 더 푸르게
들판을 점령한 잎이 둥근 식물아

텅 빈 속을 고독으로 채우며
거친 바람에도 눕지 않고
차가운 봄밤의 외로움을 견디며
한 송이 하얀 꽃을 피워

벌 나비 불러들여
생육과 번성의 몫을
아무런 소리 없이 얌전하게
그 내력(內力)대로 사는 꽃아

언제나 한 대궁이지만
군락을 이루어
열병하는 제군 같은
아주 늠름한 군인 닮은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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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풀잎

박인걸

오월의 풀밭은
살아 있는 것들의 절정이다.
바다 빛 보다 더 푸른
풀잎이 파도친다.

얽히고 설 켜서
피아의 구분 없이
허락된 영역 안에서
고유의 케슈탈트로 산다.

밟혔다가도 일어서고
꺾여도 다시 뻗어
종족 번식의 강한 의지가
꽃잎에 새겨져있다.

밤이면 무서워 울고
뙤약볕에 진땀을 쏟지만
해충이 없는 오월은
풀잎들의 낙원이다.

나무랄 데 없는 싱그러움이
언덕과 들판에 출렁이고
꽃 떨어진 자리마다
앙증스런 씨방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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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파

박인걸

미세 먼지 주의보가
하루가 멀게 문자로 송달되는
기해년의 정월은 유난히 차갑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영세한 서민의 어깨는 무겁다.
황량한 겨울 거리는 인심마저 차가워
절박한 이들의 아우성이
호치(豪侈)로 위장된 도시 골목에서
폭포 소리로 울려 퍼진다.
그 집 사람이 바뀌던 그 날에
순박한 이들의 기대감은 풍선 같았으나
아직도 기한은 멀기만 한데
무량한 탄식이 공허한 하늘을 맴돈다.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려는 자들은
짓눌리어 비틀거리다 스러지고
목련꽃 봉오리처럼 피어나던 자식들은
취로의 절벽을 더듬거린다.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마저
안개 낀 고속도로와 같아
자신을 잃은 무리들이
겨울 갈대처럼 나부낀다.
교묘한 잔도(棧道)를 곡예 하듯 걸어야하는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군중들이
살벌한 한파가 기세를 떨치는
연두의 거리가 크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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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허무

박인걸

경숙옹주 누워 깊이 잠든
까치울 오솔길에는
너부러진 고사목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웅변한다.

어디론가 흘러가는 구름과
유령처럼 떠도는 바람
웅크린 바위를 뒤덮은 이끼에서
존재들의 허무를 느낀다.

근원적 출처는 미궁이나
기묘의 입김에서 출발한 존재들이
어느 시점을 지나면
하나같이 소멸의 길을 걷는다.

아직 내가 살아있음은
자연 섭리의 순응지만
어느 날 심장이 멋을 때
숲에서 한 줌 흙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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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호수

박인걸

호수에 오면 내 마음이
맑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고향만큼이나 넉넉하게
받아주기 때문이다.

호수는 언제나 푸근하게
하늘과 구름과 산도 품는다.
산이 저토록 아름다운 건
호수에 몸을 담그기 때문이다.

사납게 뛰놀던 바람도
호수에 이르면 순해 지지만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은
아직은 일렁거리고 있다.

호수에 나를 빠트리고
며칠만 잠겼다 다시 나오면
내 마음과 눈동자도
호수처럼 맑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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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혼자

박인걸

머나 먼 하늘에
덩그러니 걸린 달이
그 긴 세월을
혼자여서 외롭다.

나 역시 그 먼 길을
혼자 왔다고 생각하니
외로이 살아 온
내가 나에게 불쌍하다.

저 높은 산등성을
혼자 넘는 노루였고
가로지른 푸른 강을
혼자 건넌 새였다.

나 혼자 걷다가
지치면 스러졌고
많이 서러운 날은
굵은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혼자 아닌 것 있으랴
너도 나로 우리 모두
저 혼자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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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흐린 날

박인걸

태양 하나가 온 세상을 밝히느라
지치고 곤 할 때면 구름이 이불이 된다.
때때로 쏟아지는 빗줄기는
감격하여 흘리는 태양의 눈물이다.

홀로 세상을 밝히는 사명감으로
정열을 쏟아 붓는 고단함과
허공을 건너는 두려움에 아찔해도
구름에 몸을 맡기고 잠들 수어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내가 기댈 수 있다면
나를 품어 줄 그 누군가가 있다면
나의 덧난 상처와 아픔을 싸매 줄 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랴

오늘처럼 잔뜩 흐린 날은
구름이 태양을 위로하는 날이다.
포근한 품에 안기어 한 잠 자고 나면
내일 아침 밝게 웃으며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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