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시모음 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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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시모음 12편

김영숙시모음 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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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목이여 안녕

김영숙

거기가 여기 같고 여기가 거기 같다.
떠돌다 만난 사람 온몸으로 취하고
거칠고 다정한 말들 어깨가 섞일 수 없다

죽어서 사십구일 만에 마지막 돌아온 길
낯익은 골목은 이제부터 낯선 영역
뻥 뚫린 심장의 설움 비벼 댈 곳 하나 없다

지상에 눈 없는 자 본능으로 찾아간다
캄캄한 막다른 길 어느 문이 내 집 문인가
어쩌나 아무도 없다 물건들만 독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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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대 시월 마지막날엔

김영숙

그대여,
시월 마지막 날
황홀한 꿈길 속에
당신이 내어주신 사랑의 밀어(蜜語)로
가득 채워진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습니다.

그대 입김으로
바람의 채찍을 맞은 연민은
이름 없는 영혼 속에 머물고
사모하는 나의 임은
목메게 부르다,
고독한 여인의 입술 위에
사랑의 불을 지핀 채
추억 속으로 쓰러져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대여,
우리들의 시월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십니까?
너무나 황홀하고 눈부셨던
당신의 미소
당신의 몸을 아낌없이 태워
차 한잔의 추억을
그리움으로 가득히 채워 놓은 채
당신은 나에게
눈물로 시를 쓰라고 하십니다.

나의 시는
당신을 위한 노래이며
나의 시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당신을 사랑하다 죽어갈
영혼의 눈물입니다
당신의 눈 속에서 나를 보시고
나의 눈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십시오
그대, 시월 마지막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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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움은 혼자 일 때 흐르는 강물

김영숙

문득 네가 그립다
햇빛이 나를 비춰 그림자 하나 만들어 낼 때
초록 무성한 나무 그늘아래 놓여 있을 때
그리움은
순간에 찾아와 온몸에 달라붙는다

문득 네가 그립다
찬바람이 나의 등줄기에서 느껴질 때
발등위로 낙엽이 소리 없이 떨어질 때
그리움은 소리 없이 찾아와
나의 핏줄 속에 흐르고 있다

문득 네가 그립다
삶의 변두리 창가에서
바람 따라 눈이 내리고 촛불이
그리움의 무게로 인해 촛농 되어 흐를 때
문득 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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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가 내게로 오기까지

김영숙

가을의
달밤은 추억처럼 깊다.

나이테 그리며
서성거리다
멈추어진 시간처럼

네가 내게로 오기까지
진실의 길 위에서
이 가을처럼만 살자

비우고 또다시
일어서는 일이란

네가 내게로 와서
이별을 고하며

사랑하는
이름 하나 땅에 묻는 일

바람에 흔들려
갈대 숲 술렁이고

사모하는 마음이야
첩첩이 산을 품어도

너를 바라보는 설움이야
눈을 감고 발목이 시도록
이 가을을 걸어가는 일

하늘의 우는 소리야
바람처럼 휘몰아
다시 되돌아와도

너와 내가 없는 인연으로
네가 내게로 오기까지

산다는 것이
눈물겹도록 서러운 날

해질 녘
가을처럼 사랑하며

진실의 길 위에서
이 가을처럼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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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맷돌의 시간

김영숙

햇살 핀 텃밭에서 콩알들이 수런대고
한알한알 허기진 울음으로 영글어 간다
검붉은 가을 속에서 옹골찬 이야기 품고

도리깨가 춤을 추니 알알이 쏟아진다
태양의 뜨거움에 꼬투리가 탈색되고
넉넉한, 겨울이 온다 맷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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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변성기의 아이들

김영숙

하나라는 것은 여럿이 아니라는 것
아팝나무 꽃송이 송이 달고 있어도 한 그루
고로쇠나무 제 몸 속 피돌 남김없이 쏟아내도
팔 벌린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별들 수 천 개 빛나고 있어도 그림자 하나
발목 잡힌 차 북북거려야 소용없는 만원 버스 한 대
거기
푸른 오월이 온통 함박눈이고
불거진 옹이마다 숨겨둔 울음 주머니이고
한 줄 긴 금 긋고 달리는 별똥별일 뿐
마침내
변성기의 아이들 가득 실은 초록 봄이 왈칵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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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불갑사

김영숙

되돌아올 사람이 오다가다 길 잃을까 봐
꽃무릇 안개 속에 발목을 적시고 있다
저 붉은 기표 같은 몸짓, 산승도 멈짓한다

사랑이 지난 자리 무욕이 피어난다
성글은 범종 소리 사방 한결 환해지고
어느새 알몸 드러낸 꽃망울 벙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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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랑의 이름으로

김영숙

이 아름다운 계절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사랑을 주되
상처 받지 않을 만큼만 가슴을 내어 주십시오.

이 화사한 계절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거든
서로 상처받지 않을 거리에서
더욱더 고독해지는 연습을 하십시오.

사랑은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서로 낮추며
영혼 속으로 들어가 진실의 문을 두드리며
침묵 속에서 서러운 용서에 자신을 창조하며

죽어갈 청춘 앞에 엎드려
참혹한 고뇌의 울음소리를
가슴으로 기억하는 영원의 향수

아파서 슬픈 계절에
가슴으로 안을 수 없는 바람이 불거든
서러운 운명의 마지막 성숙을 위하여
고독한 달빛을 마시며

계절이여
사랑의 이름으로
추억 속에서 잠들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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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김영숙

기억하기 위해
널 부르는 건 아니다.
넌 이미
내 기억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두 눈을 만들었고
영원 속에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하늘과 땅을 가장 신성한 자리에 내려놓았다.

고독한 별들의 노랫소리가
밤마다 이슬로 내려와
너 나의 가슴에
안개로 피어오를때
꿈꾸던
우리의 사랑은
이름 석자가 새겨진
그리움의 형상들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바다를 만들었지 않느냐?

넌 나의 심장 속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따스했던 순간들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너무나 외로운 이 세상에
가장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었던 사람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영원으로 널 기억하기 위해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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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혼 위에 뜨는 큰 별

김영숙

하얗게 빛 부신 영혼의 길 위에서
당신의 손을 잡고
사연 하나
가슴으로 다 적지 못했어도
시작도 끝도 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긴 여정은
느낌, 그 하나로
바람의 언어로 함께 사랑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둠 속에서
맑은 영혼의 이슬을 토해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아침 햇살의 울음소리처럼
슬픈 사랑의 눈빛은
기억으로도 지울 수 없는
가슴 저린
추억의 창으로 그려 넣으며
고독한 연인의 눈물을 담습니다.

애타게 부르지 않아도
내 안에 가득 채워져 버린
당신의 숨결은
혹독한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바람의
여리디여린 고백으로
미친 듯이 구겨져 쓰러져 가는
삶의 주춧돌 위에
흔들리지 않게 버팀목을 놓아주신
당신.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언젠가
죽어 가야할 이 세상에서
크게 한번 웃어보지도 못할
고독한 세상에
사랑의 옷을 입고
사람의 향기 피우는 당신은
영혼 위에 뜨는 나의 가장 큰 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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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저녁나절

김영숙

노을이 잔물지는 나뭇가지에
어린 새 날아 들고
송사리떼 파들거리는 실개천
새 색시 볼처럼 정다웁다

머루 다래 고요를 담고
이끼 낀 바위엔 전설만 남는다

산골짜기 풀잎들
흐느낄 때
회색 빛 연기 피어오르고
하롱하롱 어우러져 지는 꽃잎
아쉬워
꽈리 같이 익어 가는 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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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치자 꽃 설화에 부쳐

김영숙

사랑이 서럽기야 했겠습니까
다 영글지 못한 인연으로 만나져
내도록 눈썹 밑에 달라붙은 채
눈을 감으나 뜨나 발 그림 그리고 섰는
미련이 그리움인 까닭입니다
내 전생에 어찌 살아
만나는 인연마다 골이 패이고
설익은 목탁소리에 속울음을 묻는 것인지
아무런 답을 들려 보낼 수 없었던
업장이 서러웠던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번민은 아닙니다
안고 싶은 그 사랑을 밀어내며
힘 풀리어 매달리던 무거운 두 팔
승속을 흐르는 일주문 달빛에 젖어
좀체 떨어지지 않던 한 쪽 다리입니다
정작 서러운 것은, 법당을 서성이다
열린 법당문을 빠져나가던 경종소리 쫓아
인연하나 변변히 맺지도 못하면서
변변하지도 못한 인연하나 못 놓아
산문을 되돌리던 복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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