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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나는 참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문학책이라곤 데미안을 포함해 다섯 권 남짓, 결코 10권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문학적 표현이나 기교에 약하다. 그래서 나의 시는 대부분 가장 평범한 일상 언어로 인생이란 내용을 담는 데 치중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 활동을 한, 문학적 소양이 대단한 후배와 통화에서 소주잔에 얼굴을 담아서 한잔하자는 말을 듣고 너무 괜찮아, 소주잔에 얼굴을 담는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시를 몇 편 적었다. 

그리운 사람이야 무엇을 매개로든 떠오르기 마련이고, 특히 술을 마시면 더욱 애절하게 떠오른다. 젊은 한때 그녀를 떠나보내고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던가. 집착은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훌훌 털어버린 줄 알았지만, 한때는 술만 마시면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술잔에 그녀 얼굴이 떠올랐던 것도 같다. 뿌옇게 아른거리는 그녀의 얼굴이 술잔에 떠올라 흔들거리고, 술 몇 잔에 속이 그녀로 꽉 차 몸이 무거워진 나는, 서울과 부산 어느 길거리에 그렇게 쓰러져 몇 해 동안 그녀를 게워냈다. 

술을 먹고 속을 비우는 것이 진정 그리운 사람을 비우고 잊기 위함인 것인지, 몇 해 그렇게 속을 비우고 나니 아픈 기억은 말갛게 비워지면서 무지갯빛 그리움만 남아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는 그마저 비워졌는지 술도 많이 안 들어가고 더 이상 게워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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