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의 물의 의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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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의 물의 의태성

李英芝 0 2034
은유의 묘사를 통한 객관적 사물어를 통한 시를 통한 물의의태성은 물의 의태어가 지닌 하이퍼성으로  이동 혹은 초월로 변화를 지닌다. 

가만히 비가 되는
넌 나의 하얀 운명
정말로 눈물눈썹
하늘이 그립도록
마음의
진주 꽃으로
하얀 기둥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에서

비는 히브리어로 계심이라 발음한다.  얼핏 보기에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바램처럼 보인다. 그렇더라도 해석하고 연구하는 자에 따라 달리 비치는 이 중심주제는 하늘의 빛이다. 마음의 빛을 가진 자에게 다가오는 감사함으로 인한 생활의 실제는 빛을 마음에 품은 마음이다. 이 마음은 시인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른 물체에 대한 두 시각이 있게 된다. 그저 바라보면서 의태어를 느낄지라도 시를 쓰지 않으면 의태어가 탄생하지 않으면 보는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생각을 끌어내는 일은 시인이 되는 일로 의태어가 탄생한다.
빗물은 시인의 마음에 늘 스며든다. 동시에 마음도 언제나 상대방에게 늘 스며든다. 그 곳에선 서로 마음이 교감되는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아름다운 마음을 나누는 일은 행복이 샘솟게 한다. 좋은 물을 먹으면 아름다운 글이 태어난다. 물 곧 말씀을 가진 생명의 원동력은 새로운 삶이 생겨지고 그에 주어진 대상을 아름답게 조명한다. 시를 통해서 드러나는 물은 물위로 걷거나 물속에 가라앉거나 물을 매개로 한 하늘로 올라가는 등의 상상력이 총 동원되면서 기쁘고 즐거웁고 감사하고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이 행복의 구심원은 물속이다. 곧 말씀 속에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물은 절대적으로 마음과 관련된다. 이퇴계는 인간본성을 찾는 성인(成人)진리 찾기를 상대방을 향한 경(敬)철학에 둔다. 철학과 문학과의 접맥은 물의 경우 그리움의 정서이다. 그리움이란 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 내는 맑은 심성으로 남을 높이는 데서 발생한다. 사랑은 그리움에서이며 이 그리움은 미움이 아니다. 문학에서의 자유는 그리움이나 사랑이나 이별에 대한 맑은 심성이다.
이 밑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절절한 존경과 그를 향한 경사상이 있다. 물이 마음과 긴밀성을 가진다는 것은 2차적 이해이다.
2차적 뜻은 마방진과의 관련된다. 황하의 지류 락수강에서 올라온 거북이 등에 그려진 그림과도 관련된다. 숙종 때의 최석정(1646-1715)은 구수략(九數略)에서 물은 도(道)에서 생긴다 하였다.

옥수수 참외참외 여름이 익는 밤이 참 참외 익혀가며 한낮을 걸어오자 내 산은 지금마악 한차앙 익어들고 마음은 한창 익어가 불러들인 강물에 강물에 한강물이 하안창 불어나며 가슴에 들이밀며 발목에 감아들며 커다란 부피로 들며 들이치는 한여름 하늘물 웃음속이 훠언히 들어나는 옥수수 촘촘히로 참외씨 촘촘히로 쾅쾅쾅 여름소나기 들이밀어 붙이는
- 이영지 「옥수수와 참외의 여름」 새벽기도 1832

이영지의 시의 하이퍼성은 얼핏 보기에는 시의 외연이 여름 옥수수로 단순한 먹을 거리 옥수수 같지만 이러한 외연과는 달리 옥수수 곧 한문화권으로 이야기 할 때 옥수(玉水) 곧 맑은 물이다. 옥수수(玉水水)는 아주 맑은 물이다. 이 시의 하이퍼성은 엄청난 시의 내포 옥수수이다. 한창 여름에 그 맑은 물이 더욱 맑아지는, 다시 말하면 물의 의태어에 대한 절대의 물의 가치이다. 참외는 참으로 익어가는의 의태어가 된다. 따라서 이 참된 진리가 익어가는 계절이 된다. 단순한 물의 의태어에서 벗어나 물이 그 양을 많이하면서 새벽기도가 주는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익어가는 이영지 삶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시에서의 외연과 내포의 긴장성이 있을수록 시의 하이퍼성이 된다.

물은 생명을 주는 원천수이기에 시에서, 푸르게로 표시된다. 동시에 생명이 살아있음 또한 ‘푸르르게’로 표시된다. 시어의 의태어는 성경언어 히브리어로는 강 ג󰗞󰘵(페레그, 시 65: 10)이다. 한국말의 ‘푸르게’라는 말이다. 히브리어와 한국어가 같은 푸르게 되는 현상은 물이 있는 강이 있어서 푸르게 된다. ‘프르게’라는 한산자의 시에서 보이는 의태어는 물이 주위의 풀이나 심은 나무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생명의 언어이다.
이영지의 시조에서는 푸르게가 더 짙은 ‘짙푸르름’으로 물이 의태어화 되어 있다.

물로만
둘러리 선
궁전에
집을 짓고

처음은
짙푸르게
바다의
푸른 벽을

백합에
엮기만 했지
물기둥의

박이
- 이영지 「백합조개 - 새벽기도 · 1800」에서

가만히
등을 안아
하늘을 잠재우는
시냇가
물안개가 하얗게 올라간다
물에서 피는 꽃이라
수은등을 달았다
- 이영지 「넌 나의 하얀 운명 - 새벽기도 · 1612」에서

하늘을 달래기까지 하는 물의 의태어는 푸르름에서 하얀 꽃으로 의태화한 하이퍼성이다. 물 위로 오르면서 움직이지 않는 수은등을 하나 달아 기독교시의 하이퍼성이다. 바람을 잠재우는 푸르름이 물의 의미를 넘어서서 마음의 의태어가 된다. 시인의 깨끗한 마음과 의미비중의 하이퍼성은 종교적인 시인의 마음이다.


1. 황진이 시조와 이영지 시조의 물 의태어 

1) 황진이 시조의 물 의태어 하이퍼성

이황 퇴계의 시기에는 황진이(1520?-1560?)도 있었다. 황진이 시조의 대표적 작품은 ‘청산리’이다. 황진이 시조의 대표적 작품은 ‘청산리’이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진본 청구영언』 286, 황진이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 시조는 청산 속에 있는 폭포수를 의인법으로 하여 실제적인 벽계수와의 사랑이야기를 달로 전해준다. 생명을 잉태하는 물의 향기의미는 달 속에 있다. 그녀의 달 속에 들어가 상대방이 쉬어가기를 원하는 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달 향기이미지로 하였다. 시의 외연은 황진이 시조를 통하여그 의미가 물의 정서에 대한 그리움을 물의 의태어로 하고 있다.
다음은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의 님 안(in) 이미지


      -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그림: 이영지

이 물오름은 물의 생명력, 곧 물오름(한국식 표현)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한국시인들 특히 황진이 시조에서의 아름다운 시적 기법의 하이퍼성은 그야말로 시대를 뛰어넘는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굽이굽이 펴리라
                          - 『진본 청구영언』 287, 황진이
           

동짓달    나긴밤  한허리      베어내어
…↕    ↕    ↕        ↕            어른님 오시어든날밤 굽이굽이 펴리라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왜냐하면 기호학적 이론에서도 손색이 없는 의미의 기호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시조의 정수인 초장과 중장의 전연 다른 대립성을 찾아내게 한다. 이 뚜렷한 초장과 중장의 차이점은 드디어 종장에서 초장과 중장이 만남을 통한 회복성을 제시한다. 물의 의태어를 통해서 드러나는 생명력은 살아있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물의 의태어는 물의 외연이 아닌 시의 내포성으로 하여, 시의 내포가 가지는 의미의 숨음은 물이 표면화되지 않더라도 사랑의 힘으로 문학작품에서 승화된다.
황진이 시조는 6수가 있다. 그 중에서 겨우 2수를 예시하였지만 절제된 형식 속에 의미의 다양성, 즉 시가 지닐 수 있는 하이퍼성을 폭넓게 해석하게 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시조가 되고 잇다. 이처럼 운문, 특히 한국의 시조의 우수성이다.

2) 이영지 시조의 물 의태어 하이퍼성

한밤중 날 부르듯 한 길이 수를 놓아
당신이 훈풍 되듯 명월로 걸어놓아
여인의 햇빛으로 서
바람, 청명
수놓아
                    -  李英芝 「수: 새벽기도 ・ 67」

낭자의 꽃신으로
모란의 웃은죄로
남자의 혼불이 눈뜨고 누워있네
眞伊의 초례마당에 꽃신으로 타다가

꽃혼에 꽃불로다
여인의 치맛자락
새색시 다홍치마 다홍상여 너무붉어
眞伊의 꽃신 데리고 꽃혼타고 나는 날

꽃송이
마디마다
꽃덤불
푸느라고
둥둥둥
못보다니
眞伊의 의 다홍상여
꽃무덤 치마폭 한수 꽃상여가 나는 날
                    -  李英芝 「꽃상여」 전문

황진이 시조와 이영지 시조와의 관계를 이병용은 “眞伊의 초례마당에 꽃신으로 타다가”, “眞伊의 꽃신 데리고 꽃혼타고 나는 날”, “眞伊의 다홍상여 / 꽃무덤 치마폭 한 수 꽃상여가 나는 날”과 같은 운명적 진술을 통하여 시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두 몸이 한 혼으로 만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의 시적 묘사가 17세기 영국의 종교적 형이상학파 시인들의 수사적 장점을 많이 따르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거니와 시대를 달리하는 두 여인의 시적 상상력의 근간이 되는 여성적 삶의 절제된 긴장이 주는 전통미가 또한 흡사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문학, 특히 시조에서 사랑의 의미는 늘 숨어 있는 속뜻 곧 내포이다. 이 때 사랑은 물의 의미로 대변되는데 곧 살아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 물의 하이퍼성은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사랑의 힘조차 물이 없으면 그 의미가 무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신이 부여한 힘이며 문학, 특히 시조의 절제성 속에서 하이퍼성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은 사랑으로 목숨을 걸고 사랑으로 결혼을 하고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 사랑으로 전 생의 삶을 보람으로 느낀다. 이 원동력은 늘 시 속에서 살아 숨어 있으면서 시의 내포가 된다. 그리고 늘 그 모습을 감추면서 물의 의태어로 살짝 옷을 입는다.
 
2.. 이황 이퇴계와 이영지의 시조 가계잇기- 물에 대한 의태어 시 

(1). 66봉과 물 

66봉과 물 관계는 산에서 물 찾기의 과제이다. 이황은 그의 고향 마을의 산인 청량산을 늘 오르내리었다. 느슨함이 전혀 없는 S자 형태의 가파른 청량산을 시조로 지었다.
다음은 이황 퇴계의 시조이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 이황 퇴계 「청량산가」

청량산 12봉을 아는이 나와 갈메기
갈매기 떠들건가 못 믿을 건 복숭아꽃
복사꽃 너 떠들지마라 어부알가 두렵다.
- 이황 퇴계 「청량산가」 이영지 역

낙동강이 휘감아 도는 봉화의 청량산은 암벽이 불쑥불쑥 솟은 바위산이다. 웅장하지도 높지도 않지만 연이어 솟은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잘 어울려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수려하다. 청량산의 청량사를 중심으로 청량산 육육봉(12개의 큰 봉우리, 작은 봉을 합하면 36개의 봉우리)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66봉이란 이름은 주세붕이 붙인 이름이다.

봉우리들은 꽃잎이 돼 청량산을 꽃술 삼아 한데 감싸 안은 꽃 형상으로 된 절경의 산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청량산에 지극한 관심과 더불어 일상생활에서 가까이 한 흔적이다. 이황은 이 「청량산가」에서 ‘육육봉’을 꽃, 복숭아 꽃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의 거대한 자연인 산을 꽃으로 의태화하고 이 모양이 물에 비추이면서 떨어지며 물 위에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는 묘사를 통한 이 의태어는 물과 산과의 조화를 아주 높은 하늘에서 보아야 보이는 절경의 하이퍼성을 보였다. 물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도화와 흰 갈매기가 있음을 보아 물이 있음을 은유하면서 삶의 깨끗함이 곧 맑은 물의 깨끗함과 오버렙되는 하이퍼성을 가진다.
66봉봉우리가 복숭아 모양이 되어 있는 차원높은 하이퍼성 시작은 겉으로, 곧 시의 외연은 물에 떨어진 복숭아 꽃이 사실은 물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상상력의 시로서 그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력의 하이퍼성시다. 곧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시적 특수성으로서의 가상현실이다. 직설적 해석으로 할 때 아름다움의 깊이를 심화한 이 시는 정말 청량산 모습이  아름답기에 혹여 물에 떨어지면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걱정한다다. 이 아름다운 산을 속세의 뭇 사람들이 알고 어지러히 드나들까 두려워 백구의 비상과 도화의 낙화의 아름다움을 떠들 어부를 염려하는 고도의 은유적 의태어의 극치이다.
현대인 지금 한국에서는 시조가 문학장르로 존재한다. 특히 이영지의 경우 이황의 가계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논문에서 문제제기한 바 그 해답의 일환으로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인 지금까지 이어짐을 밝히는 작업이다.
다음은 이 가계잇기가 증명되는 예이다. 

부석사 의상대사 지금도 살아있는
봉황산 대나무 숲 탑두리 두르면서
선비화 지팡이 짚고 숲실 잇는 한밤실

우수골 지나면서 당고개 이르르면
박 열린 초가집이 소백산 보다 낮아
비기실 한걸음 물러 매암정이 보인다

용두골 용트림을 들으며 자라나서
과수원 꽃잎하나 입에 문  딸이 되어
방골도 밤고을로 꽃 줍듯이 사는(生) 시

하암할베 우리 할베 퇴계어른 후손이라
소백산 사그리에 그 폭포 넘어오면
낙하암 바위하나가 부석사로 남았네
- 이영지 「浮石寺」


    당신이 펴 놓으신 우물물 한 모금을
    마시고 왔습니다 더러는 가랑잎이
    덮혀서 있었지만은 햇빛이 든 물 먹고

빛만을 잉태해서 돌아와 낳자마다
해동인 땅에 앉아 솔잎이 되어서도
맨살로 빛을 가슴에 안아들기 시작해
 
나날이 갈수록에 잎들이 둘러서며
하늘안 보일정도 가슴에 빛소리가
새어나 울려퍼져서 나갑니다 당신이
 
숲으로 덮여있는 해동이 찾아들어
되돌아 다시오는 강줄기 바라보며
의자에 하루종일을 앉아서들 있으면
 
빛바람 사이사이 울리어 부자인데
낮은데 물러앚아 해동이 하늘바람
이름을 "당신께서"라 지어놓고 기뻐서
 
맨살의 덩어리로 빛되어 개울가에
흐르며 물덩이로 해동이 해 덩어리
가슴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떠 먹는
- 이영지 「도산서원 1」- 새벽기도 · 1515. 

한걸음 물러서는 님으로 하여서도
그곳의 물자리는 그리움 차차익고
흐르는 따사로움이 구름구름 몰려와

몇며칠 몸져누워 생각에 생각 더 해
이제는 너에게로 달려갈 일 뿐이라
서른채 지붕위에는 구름구름 몰려와

한석봉 새겼다는 당신의 구름구름
그 원은 무엇인가 그 산은 어디에서
얼만큼 높으냐하며 도산 쓰는 손떨림
- 이영지 「도산서원 2」
 
본을 같이 하고 있는 이영지의 가계는 이퇴계의 형 온계의 23대 손이다.
이황 퇴계는 형을 만나기 위해 죽령경계선을 중심으로 만났다. 그 때 만나 지은 시가 전해진다. 이황 퇴계는 죽령 옛길에 한시로 「촉령대」와 「소혼교」를 세워놓았다.

영영한 물소리 정 넘쳐 흘러나네
우뚝 선 봉우리는 이별한 쌓은듯이
소혼교 안영협 골짜기 우리둘이 나눈 정
– 이황 「소혼교」 이영지 역

형님을 염려하여 부디 근무 잘 하시라
촉대를 만들어서 우리형님 충청감사
행차에 대 만들어서 보내노라 형에게
 - 이황 「촉령대(矗玲臺)」 이영지 역

온계와 퇴계 형제는 소혼교 다리 자리 곧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갈라서며 온계는 충청도로, 퇴계는 풍기군수로 공무를 보기 위해 서로 헤어지고, 또 만났음이 현재까지 한 시로 소혼교와 촉령대에서 전해진다..
그분들의 후예인 이영창은 이 길을 넘으며 다시 이 비 앞에 서 있다면서 수필을 남긴다. 

이퇴계는 형 온계가 있었는데 그 때 당시 충청감사이었다. 이 퇴계도 풍기 군수이었을 때여서 두 형제는 죽령경계선을 중심으로 서로 만나 형제애를 돈독히 하였다. 퇴계는 그 기념으로 시를 지어 놓았고 현재까지 전해진다.
퇴계어른은 죽령 옛길에 촉령대와 소혼교를 세워놓았다.


      「소혼교」                  「촉령대」

온계와 퇴계 형제는 소혼교 다리 자리 곧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갈라서며 온계는 충청도로, 퇴계는 풍기군수로  공무를 보기 위해 서로 헤어지고, 또 만났다.
이러한 형제간의 우애는 형을 염려하여 부디 근무를 잘 하라고 촉대를 만들어서 우리형님 충청감사행지 때에 만들어서 보내노라는 촉령대(矗玲臺)가 현재까지 전해진다.
이 두 시 모두 이황 이퇴계가 그의 형 온계와 서로 만나서 헤어지는 장소에 지금도 세워져 있다. 그분들의 후예인 나도 오늘도 이 길을 넘으며 다시 이 비 앞에 서 있다.
형제간에 만나면서 그 기념으로 시를 지어 놓았던 일을 보면서 나의 옛 어른이라 더욱 감회가 깊다. 나도 다소 삶이 권태로울 때 찾아와서 옛 어른들을 만나는 마음으로 잠시 차에서 내려 기념비 앞에 잘 앉는다.

이 길은 죽령 옛 길에 있다. 제7길 죽령 옛길로 정해져 있다.
내 고향 부석에서 풍기를 지나 서울로 나들이하는 3대 관문중의 하나인 죽령은 문경세제보다 47m 녹다. 추풍령보다는 454m더 높다. 죽령이라는 이름은 아달라왕 5년(158)에 죽죽이란 사람이 길을 열고 지쳐서 순사(殉死) 했다고 한다. 고개 마루에 죽죽을 제사 드리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죽령 옛길에 세워진 촉령대 소혼교는 고향 예안을 오가는 충청도관찰사 온계를 풍기군수 되계가 만나 형제간에 회포를 풀던 주변은 온달 장군의 전사지가 있다. 그리고 농암 이현보와 신재 주세봉의 사연도 있는 곳이다. 곧 풍기 소수서원과 관련된다. 이 죽령에는 죽지랑가에 얽힌 죽지의 애타는 사랑도 있다. 지금도 이러한 이야기 전설 등을 찾아 묻혀버렸던 길을 개척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죽령에는 주막도 있다. 죽령 주막은 죽령이 높고 험하여서 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자고 가거나 타고 가던 말을 갈아타던 마방이 있다. 나도 이 길에서 맑은 하늘을 보며 구름한 점을 같이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술맛 좋기로 소문난 곳에서 술 한 잔을 먹고 고개 아래 첫 마을을 들면 셋골이 있다. 깊은 골짜기에 없을 듯 걸려 있는 그림 같은 산촌을 지나 용부원리 옛 도로를 따라 마을 쪽으로 내려가서 만나는 보국사지는 신라가 고구려를 침공하고 영토를 확장한 다음 마을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지어졌다.
나의 고향에는 제 2길 죽계구곡길도 있다. 순흥 죽계구곡은 영조 때 순흥부사 신필하가 주희가 죽계천에 붙인 이름이다. 초암사에서 제1곡이 시작되어 개울물을 따라 삼괴정까지 제9곡에 이른다. 이퇴계 어른은 소수서원 앞을 제1곡으로 국망봉 등산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를 제 9곡으로 지정하시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백운동, 취한대, 금단반석, 백우담, 이화동, 목욕담, 청련동애, 용추비폭, 금당반석, 중봉합류라고 하셨다. 
초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 초막을 말한다. 이 길을 제3길 달발 길이라 한다. 퇴계 어른은 동쪽 옥녀봉과 서편 완적봉을 청룡백호로 싸인 초암사에서부터 오솔길이 나타나는데 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퇴계 이황이 걸었다는 숲은 숲길이 있다. 이 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개울과 길이 하나가 되는 깊은 협곡이 계속되는데 숲속에 감추어 흐르는 개울은 여름에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추위를 느끼는 곳이 바로 이 달밭계곡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길은 금방 목욕탕을 나오는 아가씨의 깨끗한 몸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깊이 쌓인 낙엽, 울창한 숲, 외나무다리, 돌다리를 따라 나도 이 길에서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시간을 좋은 시간을 보낸다. 신라 문무왕 29년(680) 의상조사가 영전사에 거주하면서 문도라는 제자와 함께 창건하였다.
굽이굽이 서려 있는 길에서 나는 지금도 이 길을 오가며 사는 행복을 누려서 감사하다.
- 이영창 수필 「온계와 퇴계의 형제우애」.
                         

 이영창은 지금도 이영창의 조상인 온계 후손이 살았던 경북 영풍군 부석면 소천리 202에 지금 살고 있다. 이처럼 증명되어지는 이황 퇴계의 가계인 이영지는 시와 시조로 모두 등단의 이력을 거치면서 주로 시조작품을 택한다. 이 또한 이황 퇴계가 즐겨 작품을 하였던 시조의 문학장르와 동일하다.
시조는 이미 신라시대부터 3대목과 연결지어지는 한국 고유의 문학장르이다. 따라서 그 전통성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며 특히 조선시대의 살았던 이황의 가계 잇기에서 발견되어지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시조의 전통성은 물의 의태어의 하이퍼성으로 발견되어지는 삶의 끈질긴 맥이 살아 숨쉬는 현장이 된다.
주세붕이 이름한 청량산 66봉을 시조로 지은 청량산의 봉우리는 12봉우리보다 더 많다. 그러나 시에서 이 66봉은 실제 12봉우리를 시적 리듬화한 하이퍼성이다. 실제 청량산은 12봉우리보다 더 많지만 12봉우리로 한정하고 또 이를 리듬화하여 66봉우리라 하여 신화소로 한 것이다. 함축된 66봉의 실제 12봉우리의 이 12는 신화소로서 하이퍼성을 지닌다. 봉우리가 더 있는데도 굳이 12봉우리라 한 것은 12에 대한 하이퍼시의 현실성이다. 이영지 교수는 『물의 신학과 문학』 논문에서 신화소의 12 숫자는 예수님의 제자를 비롯하여 일 년 열 두달, 물건 12개 묶음, 김지향시와 홍문표시, 그리고 이상시에서에서의 시어의 의태성으로 연구하였다. 이 12 수는 신성수로서 전 세계적인 것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이퍼성이다. 성경에서도 12제자와 이 열두제자중 가롯유다가 배반하자 그를 제명하고 한 사람을 더 세워 12제자로 삼는다. 12수를 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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