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51111) 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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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51111) 채영선

채영선 0 1053
며칠 전 아침이다. 토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손자도 일어나 있었다. “전기가 나갔어요.” 전기가 나가니 모든 게 황망하기 짝이 없다. 베이글도 구울 수 없고 좋아하는 아몬드 밀크 한 잔 따듯하게 만들 수가 없으니, 미국 사람들이 전기를 파워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힘이 있어야 일어나 움직이듯 평범해 보이는 집도 전기가 안 오니 집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간 지 30분이 지났으니 두 시간 반은 더 있어야 들어온다는 전기를 기다릴 수 없어 아직 따뜻한 현미밥을 반 공기 담고 차가운 콩나물을 그 위에 세 젓갈 얹으니 그럴듯한 콩나물밥이 되었다.

미지근한 콩나물밥에 차가운 김치를 몇 쪽 먹으며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이렇게 콩나물을 좋아하는지, 콩밭과 옥수수 밭에 둘러싸여 살게 된 것도 감사하고 마음 놓고 콩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피난에서 돌아와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많이 허약해진 중에 6년이나 되는 터울아래 나를 가지셔서 뱃속에서 움직이게 된 후에야 임신한 사실을 아셨다고 한다.

어느 월말이었을까. 쌀이 달랑달랑하던 때 어머닌 콩나물죽을 만드셨다는데 그것이 맛이 있었는지 콩나물죽이 또 먹고 싶다고 할 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 와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 후로 가끔 나는 아버지가 돈 많이 벌어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죽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아주 느낌이 좋은 음식이다. 모든 죽이 다 그렇다. 지혜로운 어머니 말씀 덕분에.

죽 뿐이 아니라 콩나물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 중의 하나이다. 거의 매끼 떨어뜨리지 않고 먹는다. 그래도 물리지도 않는 게 콩나물이다.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좋아해서 감사한 일이다. 요즘은 어떻게 키우는지 길이도 적당하게 잘 자라서 깨끗하게 포장된 콩나물을 사 먹으니 그것도 감사하다. 잘 포장된 콩나물은 보관도 쉽고 오래간다. 이렇게 바다 건너 작은 시골 마을에서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태어난 것일까. 우리보다 20년 먼저 이민 온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먹기가 어려웠다고 들었다. 고추장이며 부식이며 바꾸기 어려운 입맛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두 시간 반 자나야 들어온다는 전기는 30분이 지나자 들어왔다. 동네 소식통인 손자에 의하면 다람쥐가 변압기 통을 갉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에 조그만 다람쥐가 그런 짓을 하다니, 울타리 위를 달려가는 다람쥐를 보면 한 입에 호두 알맹이를 두 개나 물고 있다. 빤히 보이는 데크 위에 앉아 엄두도 못 낼 호두를 두 손으로 들고 야금야금 구멍을 내고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손목과 턱뼈의 힘을 가늠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 딱딱한 호두를 들고 송편 먹듯이 뜯어 먹을까.

그러나 저러나 갈색 까만색 하얀색 색깔은 달라도 잘도 어울려서 사는 다람쥐들 중에 누가 전깃줄을 망가뜨려 놓았을까. 그녀석의 몸은 괜찮은 것일까. 놀라 떨어져 죽지는 않았을까.
한국에서 가져온 날파리든가 모기를 잡는 전기 모기 채를 가끔 사용하곤 한다. 약한 전류가 흐르는지 어쩌다 날 파리가 부딪치게 되면 ‘딱ㅡ’ 소리도 요란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떤 경우에 요란한 소리가 나게 전기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기절한 날 파리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일어나 부시럭부시럭 움직인다는 점이다.

만일 다람쥐가 전기에 감전이 되었다면 그 당시 얼마나 요란한 소리가 났을까. 하긴 손자 말이 어디선가 ‘펑’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전기가 나갔다는 것이다. 불쌍한 다람쥐, 어쩌다가 무서운 전기 연장을 만져 혼이 났을까. 강아지가 예쁜 것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올 때이다. 다람쥐도 저희들끼리 꼬리를 흔들어 신호를 보내는지 모르지만 볼 때마다 꼬리를 이렇게 저렇게 흔들고 있어서 다른 동물 보다 즐겁게 해주는 것 아닌가 싶다.

전기에 감전되어 두 팔과 한 다리를 잃은 여간호사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간증하는 것을 듣고 본 적이 있다. 감전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때 알게 되었다. 병원 옥상에 비가 오는 날 올라갔다가 변개 칠 때에 그런 깊은 장애를 입었다고 말씀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린다. 전기회사에서 온 전화였다. 전기가 들어왔느냐고 불편이 없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전화를 한 집 마다 전화로 다시 확인을 하는가 보다. 말 한 마디로 관심과 마음을 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서로 못하고 살고 있는지. 관심도 가져 주는 것이며 걱정도 해 주는 것이다. 말도 걸어주는 것이며, 전화도 걸어주는 것이며 인사도 먼저 해 주는 것이다.

사랑은 일방적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이 따른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인간의 사랑이다. 자신을 버리고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한정적인 삶의 고통을 체험하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 그래서 ‘신은 죽었다’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죽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에 사실 수도 있는 것이다.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사랑으로 이 시간도 목 놓아 부르시는 유일하신 그분께 배워야할 것은 사랑이다, 비록 나누는 것이 힘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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