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성탄절 트리

홈 > 게시판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시론, 수필, 감상평 등과 일상적 이야기, 유머, 질문, 답변, 제안 등 형식이나 주제, 성격에 관계없이 쓸 수 있습니다.
(단,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는 금지하며 무단 게재할 경우 동의없이 삭제하며 향후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소망의 성탄절 트리

채영선 0 1425
소망의  성탄절 트리

망사 페티코트를 입은 한복 치마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성탄절 트리를 한국에 두고 왔습니다. 친구 목사님 아시는 분이 개척하시는 교회에서 쓰시고 싶다고 해서 즐겁게 시집을 보냈지요. 몇 년 정이 들었지만 2미터가 넘는 키에 풍채도 좋아서 넓은 공간에 알맞을 것 같아 아쉬운 것을 떨쳐두었습니다.

아담하고 소박한 트리를 찾다가 작년 이맘 때 깜박이불을 설치한 트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키는 크지만 잘 먹지 못해서 휘청해 보이는 나무, 홀쭉이 나무를 마련했지요. 조신하게 서있는 것이 여름내 거실 안에서 제 구실도 잘하더니 어느새 다시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제철을 만난 성탄절 트리는 더욱 빛이 납니다. 노래도 한 곡조 뽑을 것만 같습니다.

날을 잡아서 고이 모셔두었던 트리 장식을 꺼내어 공을 들여 요기조기 달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이 땅, 코드를 꼽으니 웬 걸 트리의 머리 부분은 까만 채입니다. 정말 나무의 머리만한 위치에만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앞 정원에 장식한 깜박이 불 하나를 이 트리 위에감아 볼까, 아니면 성탄절 트리를 다시 살까, 하지만 정이 들은 나무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여름에 얼마나 깔끔하고 시원한데,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맞아, 이 세상 어디나 빛이 비치는 것은 아니야, 양지가 있듯이 응달이 있어. 성탄절이라 고해도 맘 슬픈 사람이 얼마나 많을 텐데...”
어두운 트리 머리 부분에는 맨 꼭대기에 등불을 켜든 천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은종이 울리고 있고 사탕 지팡이가 세 개, 금빛으로 반짝이는 종이 두 개, 아기 천사가 하나 불평도 안 하고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람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이면서 도움을 주는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읽기도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빛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전해주 는 천사를 만나기도 합니다. 천사는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때에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요즈음은 종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지만 교회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교회의 종소리는 시계를 대신했지요. 종소리를 듣고 에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우리의 생활을 이어주는 노래와 같던 종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종이 한 해를 보내며 아쉽기도 한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주는 것만 같습니다. 나를 깨우고 일으키고 세워주시는 종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합니다.

무엇인가 의지할 곳이 필요한 분에게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셔서 가르치시고 지켜주시는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아무리 의지하고 붙들고 졸라대도 결코 거절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자신의 몸을 찢어 물과 피를 다 쏟으셔서 전제의 제물이 되어주신 주님, 그 겸손과 온유와 사랑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그래도 주님은 내게 와서 내게 배우라고 하셨지요.

어두운 곳을 올려다봅니다. 어두운 하늘에서 천사는 나팔을 불었고, 어두운 곳에서 주님은 눈물의 간구를 들으시고 받으십니다. 어두운 곳에서 지금도 고통 중에 기도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이 성탄절이 유난히 더 어둡고 춥지 않게 하옵소서. 눈물을 씻기시며 아픔을 감해 주시옵소서. 이 겨울이 유난히 길고 힘들지 않게 하옵소서.

깜박이 불이 다 들어오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어두운 곳을 언제나 기억하게 하옵소서.
어두운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드리던 간구와 소원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어두운 곳에서 주님과 단둘이 맺은 약속을 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어두운 곳에서 천사는 지금도 나팔을 불고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어두운 곳에서 지팡이가 필요한 이들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어두운 곳으로 주님이 흘리신 물과 피가 흘러가게 하옵소서.

성탄절 트리는 꼬마 금방울을 새알인양 품고 있습니다. 메추리알보다 조금 큰 방울에서는 금새 아기 새가 깨어날 것만 같습니다. 작은 방울 하나하나 새로이 거듭날 생명을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며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성탄절, 이 겨울이 너무나 소중해서 봄이 더디 온다고 해도 기뻐할 것입니다. 새삼스레 카나디안 파인트리가 청청하게 푸르고 고운 이유를 알았습니다. 가지마다 영혼을 위한 기도가 배어 있으니까요.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