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터뷰 기사-10/미국속의 삶/김완신 기자/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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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터뷰 기사-10/미국속의 삶/김완신 기자/중앙일보

정용진 0 1495
<미국속의 삶 >
중앙일보 1995년 11월17일*(화요일) 삶의 현장
창작이 샘솟는 그곳은 대지
장미농장 운영하는 시인  정용진 씨
71년 ‘지평선’동인으로 시작 첫발..제3 시집 준비중
 
 거친 땅에 장미를 키우기 위해 가지를 자르고 물을 주면서 땀을 흘리면 벌써 해는 저물고, 돌아와 가시에 찔린 투박한 손으로 시를 쓴다.
 장미농장을 하는 시인 정용진씨(55) 샌디에고 카운티 북단 폴브룩에 그이 농장이 있다. 낮은 구릉과 근처를 돌아가는 얕은 시냇물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이곳에 그는 삶의 뜻을 심고 살아가고 있다.
 해가 저물어 갈대숲에 찬바람이 스치고 회색 구름이 나지막히 내려앉은 저녁이 되면 그는 향긋한 땅내음이 배인 몸을 추스르며 항상 “자신과의 대화” 라고 말하는 시를 마주한다.
한국야채 재배시작
 그가 도시를 벗어나 산으로 둘러싸인 장미밭에 뿌리를 내린 것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장미농장 이전에 채소를 가꾸던 시절까지 합치면 땅과의 인연은 20년을 이어져 내려온다.
 한국에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여주농고를 다니면서 배웠던 땅 일구기 경험 하나로 77년부터 한국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야채를 재배하는 농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가 재배하는 무, 배추의 인기는 대단했다. 온타리오 농장에서 6에이커로 시작했던 농사는 몇 년 후에 50에이커의 농장으로 발전했고 농부로서의 생활은 착실한 기반을 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채소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쟁도 심해지고 농사의 어려움도 많아졌다. 이런 사정으로 한국채소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코 시를 수학하고 창작의 근원이었던 땅을 떠날 수는 없었다.
20에이커 장미농장
 그런 중에 우연히 지금의 장소를 알게 되어 장미 농장을 시작했다.
원래 장미농장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전에 살던 사람이 조그맣게 장미밭을 하고 이었을 뿐이었다.
 근처의 땅을 개간하고 그린하우스를 만들고 장미 가시에 찔리면서 늘려 간 것이 이제는 20에이커의 장미 밭과 3에이커의 그린하우스를 가진 대규모 장미 농장이 됐다.
 “10년 넘게 하니까 이제 겨우 장미 키우기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번은 난방용으로 그린하우스에 설치한 난로에서 일산화탄소가 나와 꽃을 망친 적도 있고 비가 많이 와서 꽃들이 모두 떨어져 수확을 전혀 못한 기억도 있습니다.”
 다른 농사와는 달리 장미농사가 어려운 것은 항상 수요가 일정한 것이 아니라 밸런타인스 데이, 크리스마스, 어머니날 등에 찾는 사람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이 시기를 맞추어 개화 직전의 장미를 출하해야 하는데 수요가 없을 때  꽃망울이 진 장미를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소용이 없고 한창시즌에 때를 못 맞추면 재배하면서 겪었던 고생이 물거품이 된다.
고된 노동도“즐거움”
 그는 장미 기르는 것이 어려운 만큼 매력 있는 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장미를 생각하면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마음에 다가오고 장미만이 줄 수 있는 다양한 빛깔과 향은 다른 어느 꽃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 아무렇게나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라 장미가 가진 귀족적인 습성은 장미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밤 그린하우스의 온도를 점검하고 정해진 때에 물과 약을 주어야하는 단조롭고 힘든 일 중에도 그의  마음에 만개하여 그 누구에게 꽃송이만큼이나 행복을 전해주는 장미를 떠올리면 고된 노동도 생활의 즐거움이 된다.
 장미를 많이 출하해야 할 시기가 되면 부인 정선옥씨도 농부의 아내가 되어 손에 가시가 찔리는 것도 잊고 남편의 일을 돕는다.
 하루 일과는 4시에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짙은 안개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대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시간에 전 날 준비했던 장미를 싣고 폴브룩의 새벽길을 헤치면서 장미 경매장이 있는 칼스배드로 간다. 7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장미의 가지를 자르고 단을 묶고 저장을 하면서 지난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 온 일들을 한다.
 꽃이 아름다운 만큼 재배가 힘든 장미가 이제는 어느 정도 이력이 날 때도 됐는데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이고 마치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세심한 정상과 주의로 약을 뿌리고 온도를 맞추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런 하루를 보낸 후 손에 묻은 흙을 털고 책상에 앉아 원고지를 대하면 벌써 해가 산중턱을 내려가고 있는 저녁이 된다.
 시집외 수필집 발간
 지난 71년 “지평선” 동인으로 시작활동을 시작한 후 81년도에 처녀시집 “강마을”을 펴냈고 89년에는 시문학사에서 두 번째 시집 “장미밭에서”를 출간했다. 시 외에도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를 비롯한 에세이집을 발표했으며 제3시집도 원도가 완성돼 출판 예정에 있다.
두 아들도 작가 지망
 또한 미주한국문인협회에도 관여하여 이사장과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UC 어바인과 하버드대학의 영문과에 각각 재학 중인 두 아들도 시를 쓰는 부친의 영향으로 이미 시인과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로 작정했다.
 그는 자신의 시의 출발을 “자연 속에서 연상되는 지난날의 추억”이라고 하며 “자연과 더불어 엮어가는 삶 속에서 농부로서 육신의 양식을 얻고 시라는 사유의 결정체를 수확 한다”고 말한다.
 “시를 쓰면서 농장에 몸담고 있다는 것을 항상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땅을 파기 때문에 계절을 어느 누구 보다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고 이런 변화가 시를 쓰는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도시에 살았다면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시를 쓰면서 보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문득 창밖으로 던진 눈에는 짙게 내려온 구름이 온통 하늘을 덮고 있다. 여름에 노란 유채꽃으로 현란한 자태를 보이던 산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찾아와 황량한 중턱에는 구름뿐이다. 내일이 되면 어쩌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제 비가 오면 장미밭을 가꾸던 그는 또 다른 장미를 종이 위에 그려가야 할 것 같다.
글: 김완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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