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詩 '시 창작 강의실에서'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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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詩 '시 창작 강의실에서'를 읽으며

유용선 1 2442
공식 "言 + 寺 = 詩"는 낡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정일근 선생님의 '시 창작 강의실에서'라는 시가 있다.
좋은 시다.
그런데 오독을 할 위험이 있다.

*

눈을 감고 시를 만들려 하지 마라
시는 허공에 짓는 집이 아니라
백지 위에 또박또박 그리는 설계도이니
네가 짓는 집의 집의 투명한 속을 보여다오
죽은 시집의 속에서 죽어버린 말들을 꺼내지 마라
사전 속의 미라 같은 말들을 펼치지 마라
시는 살아 있는 동물이니 살려서 풀어놓아라
네 주머니 속에 함께 뒹구는 잡동사니처럼
네 몸에 남는 지독한 상처처럼
너의 시는 너와 함께 살아가는 너의 것이니
시큼하고 똥냄새가 나더라도 너의 냄새를 풍겨다오
어디에도 있는 것은 시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는 것이 시이려니
말의 사원이 시라고 가르치는 늙은 첫장은 쭉 찢어버리고
그 사원에 너의 말들을 말처럼 뛰어다니게 하라
그중 제일 잘 뛰는 말들의 엉덩이를 때려
혈관 속에서 네 발굽으로 달리게 하라
시는 붉게 솟구치는 뜨거운 피려니
그 피에 펜을 적셔 노래하듯이 시를 써라
죽은 것들 벌떡벌떡 살아 쩌렁쩌렁 울리도록 하라
나를 죽이고 네가 세우는 깃발이 너의 영토이니
어미의 뱃속 찢고 나오는 한 마리 살무사가 되기 위해
베어라, 너의 시로 나의 시를 베어라

* *

시가 말의 사원이 되려면 먼저 사원이 '말들이 말처럼 뛰어다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위의 시에서 말하는 '늙은 첫장'이란 말(詩語)과 사원(시정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뜻한다.
아첨꾼 같은 시만 좋아하지 말고 시인의 진정(眞情)을 새겨 들어 달라는 정일근 선생님의 피맺힌 절규이다.
시를 빛나게 하는 좋은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1 Comments
달기 2004.06.19 21:28  
^^ 유용선 시인님~ 아주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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