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운 김남열의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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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 김남열의 사랑에 대하여

하운 0 178
사랑에 대하여

하운 김남열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저 세상 갈 때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다. 살다가 해도 다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기에 살면서 우리가 남기고 가는 것은 부귀공명의 흔적도 아니라, 그것은 오직 사람들을 아직도 다 사랑 못하고 떠나야 하는 미련의 사랑빛 뿐이다.

사랑은 사람의 이성적 생각과 이성적 사고를 뛰어넘으며 시간이란 것은 시간적 개념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한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 나이를 초월한 사랑 이러한 사랑이 시공의 개념을 뛰어넘는 사랑의 모습이다.

이처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인간을 근본적으로 뼈속 깊숙이까지 변화시키면서 인간 내음을 나게 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인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마 그것은 사랑이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깊이 있게 혹은 넓게 만드는 에너지의 파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그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기에 사랑은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하여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곳에는 삶에 대한 희망과 소망이 있고, 그것이 없는 곳에는 어두움과 절망이 있을 뿐이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가장 정신적 가치 있는 자본은 무엇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지위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아마 그것은 단연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사랑이 없으면 너무나 황폐하다. 사람 자체가 삭막해 진다.
 물론 사랑이란 것이 추상적인 개념만 아니다. 그 사랑은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에 사람을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기에 그 사랑에도 음식과 같은 영양소를 지닌다.
 사람이 영양소 없는 음식 먹으면 육체와 정신적 성장에 부하가 생기듯, 사랑도 그 나름대로의 영양소 및 과정적 단계를 지니고 그러한 시작과 단계를 거치면서 가장 동물적인 모습의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가장 인간적인 성숙한 모습으로 승화시켜 나가게 한다.
 따라서 사랑이 가지는 영양소란 배려함, 책임감, 존중함, 이해함을 말하며, 그 사랑의 과정이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육체적 사랑(Eros), 도덕적 사랑(Philia), 정신적(신앙적) 사랑(Stergethron), 무조건적인 사랑(Agape)이 있다. 허나 난, 또 하나를 덧붙여서 초월적 사랑이 있음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은 생각과 행위가 전체적인 행동으로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랑은 절름발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성 속에서 어떻게 출발하는 것인가.

첫째, 그것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연속적인 관심을 가짐으로써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다른 여타한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관심과 호기심은 모든 사물을 사랑하게 되는 시작점이며 출발점이 된다. 반면, 무관심 속에서는 사랑의 싹이 돋지 않는다. 

둘째로, 관심을 가지게 되면 다음으로 그 대상에 대한 배려와 깊고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들이나 모든 사물들은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개성이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편견에 대한 판단은 제어되어야 하며, 열린 마음에로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상대방과 어우러져 함께하며 서로 대화를 통하여 소통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러한 이해가 없으면 사랑은 집착이 되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버리는 음식을 편식하듯, 독단의 편식을 하게 되어 고집, 아집, 집착으로 사랑이란 신성을 탁하게 변질 시켜 버린다.

셋째, 사랑은 책임감이 수반되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만나고, 사랑하기 때문에 부부가 되어 생명을 잉태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동반자가 되어야 하므로 반드시 여기에는 책임감이 수반 되어야 한다.
 무책임은 가정을 등한시 하고, 자식들을 불행하게 하고, 외도를 하며, 주위의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노후를 쓸쓸하게 만든다.
 책임감이 동반되지 않는 사랑은 일시적으로‘좋아함’이 될지는 모르지만, 석양을 바라보며 인생을 논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은 될 수가 없다.

넷째, 사랑은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사람을 겸손하며 하심下河하게 만들어 사람들 서로가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소중하게 만든다.
 아무리 사회가 물질만능物質萬能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또한 어떠한 범주의 형식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랑은 책임감 못지않게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존중의 미덕이 사라질 때에는 사회의 분위기는 부패란 짐승들이 고개를 당당하게 쳐들게 되고, 책임감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상하게 만들며, 무능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랑은 비우며 함께 하는 것이다. 남과 남이 만나 인연을 맺고, 그 인연 속에서 결혼을 하고, 비워진 반쪽과 반쪽이 서로 만나 그 비운 곳을 채우며 한쪽이 되고, 부부가 되어 함께 영원토록 동반의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비운 자리에 반쪽이 들어 한족이 되는 순간 책임이나, 의무감, 그리고 존중함의 미덕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도 함께 채우며, 자신의 이기적 생각과 행동은 비워지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사랑은 주고받을 때 주었다고 받았다고 하는 생각들을 지우며 서로를 믿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행동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세움이 되고, 만용이 되고, 위선이 되고, 의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루어질 때 사랑은 사람들을 한 없이 부드럽게, 조화롭게, 온유하게 만들며,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이며,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이며,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은 자유로움이다. 방임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질서를 유지해 가면서의 자유로움이다.
 방임의 자유로움은 집착과 이기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며, 질서의 자유로움은 내 마음 속에 외로움과 두려움을 쫓으며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소망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자신만의 사랑이 아닌 주위에 더 많은 사랑이 잉태하게 만든다. 또한 사랑은 믿음에 대한 확신이며, 그리움이며, 배려함이며 서로를 아끼면서 바라다봄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사랑은 소유가 아니며, 방임도 아니며, 사랑은 또 하나의 자신의 인격을 형성시켜주는 것임을 이제,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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